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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받는 손이 주는 손으로

입력 | 2010-01-19 03:00:00

“아이티 돕자” 노숙인 71명 3만2000원 성금




18일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의 한국사무실에 뜻 깊은 성금 소식이 도착했다.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아이티 강진 피해복구에 써달라며 노숙인들이 모은 성금을 다음 주에 보내온다는 것이었다. 노숙인 71명이 모은 성금은 총 3만2000원.

성금을 낸 71명은 주로 서울역과 을지로역 인근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다. 이들이 이 교회와 인연을 갖게 된 것은 4년 전. 2006년 7월 어느 날 아침 예닐곱의 노숙인들은 교회를 찾아와 다짜고짜 “돈 좀 줍쇼”라고 했다. 당시 교회를 지키던 이주연 목사(53)는 아무 말 없이 그들에게 1000원을 내어주고 식탁을 차려 빵과 잼을 대접했다. 그 다음 주에 이들은 또 교회를 찾아왔고 시간이 갈수록 그 노숙인 수는 늘어났다. 오전 예배나 성경수업을 기웃거리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 목사는 노숙인들을 예배에 참석시켰고 원하는 이에 한해 성경수업도 받게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아예 이들을 위한 오전 예배 시간을 따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아침을 얻어먹기 바빴던 노숙인들 가운데 이 목사와 같이 지내려는 이들이 늘어났다. 일부는 이 목사를 도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악산 기슭에서 작은 농장을 일구고 일한 만큼 돈을 받았다. 그 돈을 착실히 모아 영등포 등지에 쪽방을 얻은 이들도 있었다.

17일 오전 일요 예배. 100명 내외의 노숙인이 참석한 설교 자리에서 이 목사는 “주는 이가 받는 이보다 복되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가장 어려운 처지라 생각하기 쉬운데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다”며 “우린 물도 마시고 먹을 것도 먹지만 강진이 일어난 아이티에는 지금 마실 물도 먹을 것도 없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조금 후 헌금 바구니가 돌기 시작했다. 생전 남의 바구니에 돈을 넣어본 적이 없는 노숙인들이 누구 하나 망설임 없이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냈다. 100원, 500원짜리 동전이 나왔다. 헌금바구니는 곧 쩔렁쩔렁 소리를 냈다. 종종 꼬깃꼬깃 접힌 ‘거금’ 1000원도 나왔다.

아이티에서 한 가족이 한 달간 끼니를 해결하는 데 드는 돈은 약 3만 원. 71명의 노숙인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머나먼 아이티의 한 가족을 살렸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