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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群居終日에 言不及義요 好行小慧면 難矣哉라

입력 | 2010-01-20 03:00:00


조선의 정조대왕은 젊은 관료가 모이기만 하면 천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개탄했다. 그래서 규장각 신하들을 질책하여 명망가의 출신으로 요직에 오른 젊은 관료들이 자기 몸을 단속하지 않고 그저 익살 부리는 것이나 좋아해서 몸은 모범이 될 만한 행실을 쌓지 못하고 입은 비속한 말을 익혀 옛 사대부의 기풍이 모조리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정조의 우려는 ‘논어’ ‘衛靈公(위령공)’에서 공자가 한탄한 뜻과 통한다.

群居는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있음이다. 言不及義는 말이 의리에 미치지 않아 대화의 내용이 도덕이나 의리와 관계가 없음을 뜻한다. 小慧는 小惠로 되어 있는 판본이 있어 혹자는 小慧와 小惠를 구분해서 小惠가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자는 小慧를 小智(소지)로 보았다. 작고 하찮은 才智(재지)라는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정약용도 그 설을 따랐다. 難矣哉는 德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장차 患害(환해)가 있으리라는 뜻이다. 단, ‘곤란하구나’라는 정도의 뜻을 지닌 탄식의 말로 보아도 좋다.

주자는 이 章을 풀이하여, 말이 의리에 미치지 않으면 放(벽,피)(방벽)하고 邪侈(사치)한 마음이 불어나게 되고, 작은 지혜를 행하기 좋아하면 위험함을 행하고 요행을 바라는 幾微(기미)가 무르익게 된다고 경고했다. 放(벽,피)은 자기 멋대로 함, 邪侈는 간사하고 사치함이다. 물론 여럿이 모여 엄숙하게 道義만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럿이 모여 하찮은 이야기나 나누고 작은 지혜나 부린다면 우리는 ‘시들어가고’ 말 것이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시에서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는 구절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