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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은 꽃필때 ‘찜’… 굴비는 촉촉한 걸로

입력 | 2010-01-21 03:00:00

전국 발로 뛰는 백화점 바이어들의 ‘최상품 고르기’
한라봉 명인된장 제주흑우… 물량확보 위해 산지 찾아




“저…, 뭐하는 분이기에 이렇게 많이 달리세요?” 김효길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바이어가 렌터카 업체에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그는 지난해 말 사흘간 렌터카로 ‘전국 일주’ 출장을 다녀왔다. 전북 전주를 시작으로 순창을 거쳐 전남 신안, 충북 청원, 경기 양평, 부산 기장, 경북 울진까지 모두 3000km를 달렸다. 600년 종갓집 김종희 명인의 된장, 전주 김병룡 명인의 궁중비법 서리태 진간장 등의 제조시설과 생산물량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통식품, 로컬푸드, 슬로푸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땅 구석구석에 깃든 ‘명인의 혼’을 찾아 백화점 상품기획자(MD)들은 동분서주한다. 이들이 접촉하는 명인은 한정이 없다. 사과 돌미역 조청 곶감 한과 김 한우 멸치….

연창모 롯데백화점 농산 선임MD는 “명인들은 처음에는 만나 주지도 않고 애써 납품 약속을 받아도 말 한마디 실수하면 물건을 안 줄 때도 있다”면서 “제품에 대한 자부심과 고집이 남다르다”고 웃었다. 그는 수시로 제주를 찾는다. ‘찍어 놓은’ 과실수는 꽃이 필 때부터 살펴본다. 농부들과 1년 농사를 함께 짓는 셈. 한라봉은 보통 350∼400g이면 큰 걸로 치는데, 500g 이상짜리를 고른다. 그는 “과일을 크게 기르는 일은 쉽지 않다”면서 “솎아내기, 가지치기 등 숙련된 재배기술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제주 한라봉 농장에서 연창모 롯데백화점 농산 선임MD(오른쪽)가 농부들과 함께 과일 중량과 상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숙련된 재배기술이 최상품 과일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장동건 현대백화점 정육 바이어는 6일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 흑우를 확보하러 간 길이었다. 제주 흑우는 분기별로 5∼15마리만 출하된다. 그는 서귀포와 제주축협에 등록된 흑우 현황 데이터를 확보한 뒤 목장을 찾아 소의 발육 상태와 혈통 기록, 사료, 사육환경을 확인했다. 장 바이어는 “육질이 뛰어나고 맛이 담백하지만 제한된 수량 때문에 물량을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한국산 돌김’까지 부활시켰다. 롯데백화점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남도미향 토종김’은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연구센터와의 협업으로 태어났다. 셀 수도 없이 김 농장을 찾았다는 임준환 롯데백화점 수산 선임MD는 “토종김은 일본종이 섞인 기존 김보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면서 “다소 억센 씹는 맛을 개선하는 연구를 계속해 상품성을 더욱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MD들은 소비자의 취향 변화도 발 빠르게 따라가야 한다. 예전에는 굴비가 완전히 꾸들꾸들하게 잘 말려서 나왔지만, 요즘 굴비는 촉촉함이 남아 있게 살짝 말리고 명인이 생산한 천일염을 쓴다. 굴비를 엮을 때는 녹말로 만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

또 백화점의 ‘명예’를 지키려는 품질 차별화 노력도 각별하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가 물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맛은 ‘반타작’ 정도로 들쑥날쑥한 사과를 고른다면, 백화점은 균질한 맛을 지닌 사과를 선택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얼마나 맛있느냐’가 아니라 ‘맛없는 사과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라는 게 백화점 바이어들의 설명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