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봅슬레이 대표팀은 4인승 종목에 이어 2인승 종목까지 사상 처음으로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20일 귀국한 봅슬레이 대표팀 리더 강광배(37·강원도청·사진)는 피곤해 보였지만 밝은 얼굴이었다. 그는 “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이렇게 환영해 주는 종목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무릎 다쳐 스키 접고 썰매로 포기 모르는 ‘영원한 개척자’

“스키가 재미있었어요. 모든 것을 스키에 걸었죠. 하지만 대학 3학년 때인 1995년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어요. 꿈이 모두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어요.”
그는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더는 스키를 탈 수 없었다. 이때 그는 1997년 루지 선수를 선발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접했다. 주저 없이 지원한 그는 1주일간의 강습회에서 30명 중 2등을 차지해 정식 선수가 됐다. 올림픽 출전권도 따냈다. 성적은 31위로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올림픽이 끝나고 그는 운동과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인스브루크대 스포츠과학부에 입학한 그는 아르바이트와 운동, 학업을 병행하며 올림픽에 대한 꿈을 불태웠다.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대한루지연맹에서 세대교체를 이유로 대표선수 자격을 박탈했다. 운동 중 또다시 무릎을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내 인생이 확 바뀌게 된 것이 그때였습니다. 대표 자격이 박탈됐고, 부상을 당했고, 비자까지 만료가 돼 완전 밑바닥이었습니다. 수술 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눈물을 꾹 참고 수업 중이라고 한 뒤 끊었어요. 정말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습니다. 그때 ‘죽어도 여기서 죽자. 무엇이든지 마무리하고 귀국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이 정도면 운이 좋은 것 아닙니까.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운이라는 것은 노력을 해도 안 올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운과 노력이 모두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한국은 봅슬레이 4인승, 2인승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2인승은 기대하기 어려운 종목이었기에 기쁨은 두 배였다. 두 종목 모두 참가하면 훈련 시간도 많아지고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을 기회도 많아진다. 하지만 그는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1년에 100일 이상을 해외에서 생활합니다. 2006년 결혼 뒤 아내와 나들이조차 잘 못했어요. 가족에게 미안하죠. 가족의 이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습니다. 마음 편하게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이런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아요. 아직 2세도 없으니 부모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지만 목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선수로서 한국인으로서 목표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 욕심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정색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메달 욕심은 있긴 하지만 나 자신을 잘 압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노력하는 스타일이지만 사실 운동신경은 없어요. 메달을 따는 선수는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나는 후배들이 메달을 따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잠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뒤 26일 시차 적응과 전지훈련을 위해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로 떠난다.
인천=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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