멥쌀 소주에 배-생강 넣고 침출… 은단 씹은 느낌
전통주 명인 고천 조정형 선생이 배, 생강, 울금, 계피를 넣어 빚은 이강주를 만들기 위해 소줏고리에서 술을 내리고 있다. 전주=박영철 기자
향토사학자이자 시조시인이었던 그의 선친 작촌 조병희 선생(1910∼1996)은 그가 태어나던 날 일기에 “산모가 태몽에 땅속에서 술 빚는 솥이 솟아오르는 꿈을 꾸어 솥 정(鼎) 자를 넣어 이름을 정형이라고 지었다”고 적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술에 관한 한 누구보다 이론과 실재를겸비한 사람이다.》
1964년 전북대 농화학과에서 발효학을 공부한 뒤 목포 삼학소주와 전주 오성주정, 익산 보배소주, 제주 한일소주 등에서 25년 동안 실험실장과 공장장, 기술고문 등을 지냈다. 주조사 1급 자격증에 수질환경관리 1급, 전북 무형문화재, 명인 칭호에 ‘다시 찾아야 할 우리 술’, ‘우리 땅에서 익은 우리 술’ 등 2권도 책도 냈다.
소주회사 공장장을 지내던 1980년대 초, ‘애주가들의 기호에만 맞추는 술이 과연 좋은 술인가’ 하는 회의에 빠졌다. 당시 ‘밀주’라고 천대 받으며 사라져 가던 가양주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국 도서관을 돌며 민속주에 관한 문헌자료를 수집하고 특이한 술이 있다면 산골 오지나 조그마한 섬까지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전주지역에서 벼슬을 했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술인 이강주를 본격적으로 만들기로 하고 무형문화재 등록을 신청했지만 당시 전북도 문화재 심사위원이던 아버지가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민속주에 미쳐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살림까지 말아 먹은 아들에게 문화재 등록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술 익는 항아리에서 나는 ‘뽀글뽀글’ 하는 소리가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음악보다 좋았어요. 술 익는 방에서 혼자 자면서 항아리를 부여안고 울기도 많이 했죠.” 그는 숙성되는 술에 손가락만 넣어 보고도 술 익는 온도를 알아내며 코로 술내음만 맡아도 정확하게 알코올 농도를 집어내는 사람이다. 요즘도 사무실 한쪽에서 술이 발효되면서 날아가는 탄산가스로 인해 줄어든 무게를 역산해 주정 도수를 산출해 내는 방법을 실험하는 등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아주 옅은 노란색을 띤다. 흰 창호지가 빛바랜 것처럼 고풍스러운 색깔이다. 향은 짙다. 입에 한 잔 머금으면 은단이라도 씹은 것처럼 화한 기운이 가득 퍼진다. 술꾼들 사이에서는 ‘여름밤 초승달 같은 술’로 불린다. 이강주는 조선 중기 이후 국내 3대 명주로 꼽히던 술이다. 음식에 들이는 깊은 정성과 여성들의 빼어난 손맛으로 ‘맛의 본향’으로 불리는 전주의 명주다. 유학자 유득공의 ‘경도잡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등에 이강주는 평양 감홍로, 호남 죽력고(정읍) 등과 함께 최고의 술로 꼽혔다. 고종 때 한미통상조약 체결 당시 건배주로 쓰일 만큼 국가대표 술이었다.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중국, 호주에도 수출한다.
문제는 숙성 시간이다. 이강주는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맛이 깊어지는데 여러 여건 탓에 6개월 숙성이 전부다. 그는 제대로 된 술 저장 공간을 마련해 오랜 숙성을 거친 이강주를 만들어 세계 명주들과 한판 붙어보는 꿈을 꾼다. 그동안 모은 1200여 점의 술 관련 자료로 술박물관을 열고 전통주 기법을 총정리한 책도 펴낼 계획이다.
“이루어질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죽기 전에 전국 명주의 장점을 딴 최고의 술 ‘신선주’를 한 잔이라도 만들어 보고 싶소.”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