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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내 자식에게도 SAT문제 빼내달라”

입력 | 2010-01-22 03:00:00

일부 학부모들 ‘황당한 요구’
문제유출 해명 학원 설명회서




“우리 아이만 정당하게 공부하다가 피해를 보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문제를 유출할 거라면 우리 아이들도 끼워주세요.”

21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E어학원. 아시아와 미국의 시차를 이용해서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지를 빼낸 강사의 전 소속학원으로 문제가 된 이 어학원은 학부모들을 불러 최근 SAT 문제 유출과 관련해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부모 30여 명은 불법 문제유출의 문제점을 따지기는커녕 “일부 학생에게만 유출한 문제를 주면 안 된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또 다른 학부모는 “솔직히 고액의 수강료를 낸 만큼 그만한 이득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속내를 털어놨다. “이제 와서 학원이 ‘앞으로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사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어차피 문제 유출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학부모 입장에서는 문제를 빼돌려 주는 강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학부모들도 비싼 수업료에는 그만큼 ‘대가’가 있다는 걸 알고 투자한다”고 귀띔했다. “보통 수강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요. 30여 명이 같이 듣는 그룹 수업은 4주에 200만 원쯤 하는데 별 도움이 안 돼요. 6명으로 구성된 소수반은 수업 한 번에 30만 원이고요. 원하는 대학에 합격까지 보장하는 개인 수업은 부르는 게 값인데 1억5000만 원까지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장 23일 SAT를 앞둔 학부모들은 걱정에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 아예 한국 학생들은 시험을 못 보게 되는 건 아닙니까?” 학부모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이 학원 원장 이모 씨(33)는 “미국교육평가원(ETS) 측에서 한국 학생들의 SAT 점수를 의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특별히 이번 일로 크게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학부모들을 다독였다.

설명회가 끝난 후 학원을 나서던 한 학부모는 “솔직히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도 많이 일어난다는데 괜히 문제를 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경찰 수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능력이 되면 돈을 얼마를 들이든, 무슨 짓을 하든 자식 잘되게 돕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닌가요?”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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