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맛본게 재산”뉴욕주재원 시절 문화에 눈떠거래원과 오페라-발레 등 교류“자기계발 북돋워야 좋은 회사”
귀뚜라미홈시스 이승창 부회장은 자신을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조금 늦더라도 주변과의 조화를 깨지 않으려 노력했고 너무 뒤처진 듯하면 막판 스퍼트를 했다고 한다. 홍진환 기자
○ 뉴욕서 문화의 중요성 배워
㈜대우에 입사한 지 2년째인 1979년. ‘이승창 사원’은 대우건설 등이 사용할 장비 구매를 담당하는 뉴욕 주재원으로 발령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는 5년 동안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 살면서 문화에 눈을 떴다.
오페라 ‘라보엠’에 대해 얘기하고, 발레 ‘지젤’을 화제에 올리자 거래처 사람들은 ‘동양 사람이 그런 걸 어떻게 알지?’ 하고 갸우뚱하면서도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그네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하자 대우가 달라졌다”고 회고했다. 건설장비 구매를 위해 방문하겠다고 하면 자가용 비행기를 보내주는 거래처도 생겼다는 것.
그 당시 재미를 붙인 오페라와 발레는 지금 이 부회장의 취미로 남아 있다. 뮤지컬과 콘서트도 즐긴다. 뮤지컬 ‘팬텀 오브 오페라’를 최고로 치며 최근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관람한 팝 가수 셀린 디옹의 콘서트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가 뉴욕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눈이 있으니 많이 보고, 귀가 있으니 많이 듣고, 입이 있으니 많이 맛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화는 분명 삶의 촉매고 윤활유였다.
○ 대우맨으로서의 자부심과 상처
이 부회장은 자신은 행복한 회사원이었다고 했다. 대우가 세계로 뻗던 호시절,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대우는 항상 선두에 서서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갔고 남들이 하지 않는 사업을 했다. 그는 정말 신나게 일했다. 항상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적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돌이켜보면 월급쟁이는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을 조금 받는다고 생각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에 걸쳐 대우일렉 매각이 무산됐고 이 부회장도 2008년 말 대우일렉을 떠났다. 매각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난 것은 아직도 마음속 짐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대우일렉이 꼭 좋은 주인을 만나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 中企는 치열한 삶의 전쟁터
32년간의 대우맨 생활을 마친 이 부회장은 약 10개월을 쉰 뒤 지난해 10월부터 귀뚜라미홈시스의 해외시장 개척 임무를 맡았다. 중견기업으로 오자 대기업에서만 근무했던 자신이 ‘온실 속 화초’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기업은 회사 내부의 조직과 시스템이 많은 일을 해주지만 중소기업들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세상을 접하자 ‘세상은 넓고 배울 건 많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월급쟁이가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누구도 인생을 즐길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희생은 가능할지 몰라도 영원한 희생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자기발전을 할 수 있는 회사가 진정 좋은 회사입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이승창 부회장은… ▼
―1950년 인천 출생
―1974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77년 ㈜대우 무역 부문 입사
―1979년 ㈜대우 미국 뉴욕 주재원
―1986년 ㈜대우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재원
―1988년 ㈜대우 기획조정실 전략 기획 담당 부장
―1995년 ㈜대우 반도체 이사부장
―1998년 미 보스턴대 EMBA
―1999년 대우전자 홍보담당 이사
―2003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전무
―2005년 대우일렉트로닉스 대표 이사 사장
―2009년 귀뚜라미홈시스 대표이사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