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상, 이인재 그림 제공 포털아트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호칭이 있습니다. 나 이외의 모든 대상이 호칭을 부여받게 됩니다. 호칭이 없으면 상대를 부를 수 없고, 상대를 부르지 못하면 허공에 말을 하는 것처럼 대화가 겉돌고 전달이 불분명해집니다. 그래서 마땅한 호칭을 정하지 못할 경우 애매하고 어정쩡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어는 할아버지건 아버지건 내 앞에 있는 모든 대상을 You라고 부를 수 있지만 우리말에는 세심한 구분과 차별이 있어 무턱대고 당신이라는 이인칭 대명사만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말의 당신은 삼인칭에서는 높임이 되지만 이인칭에서는 높임이 아닙니다. 손윗사람을 대하면서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부부 사이에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여보라는 말의 어원을 ‘여기+보오’ 정도로 푸는 견해가 일반적이니 상대방을 정확하게 호칭하는 게 아니라 ‘여기 보시오’나 ‘이것 보시오’ 정도로 얼버무리는 호칭입니다. ‘당신’도 높임은 아니니 부부 사이의 호칭이 참 서먹서먹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뭔가 어색하고 계면쩍어 내외하는 풍경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우리의 호칭 문화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영어의 ‘You’를 부러워하는 사람을 간혹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상대하는 모든 사람을 당신이라고 호칭한다고 가정해보면 그것이 편의적일 수는 있겠지만 우리처럼 정(情)을 중시하는 토양에서는 관계의 산성화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당신, 자식에게도 당신, 부모에게도 당신, 선생에게도 당신, 제자에게도 당신, 선배에게도 당신이라고 부르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님의 시인이라 할 수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은 ‘님만 님이 아니라 기른 것은 다 님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사물과 생명, 나아가 우주로까지 님의 의미가 연장되고 확장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님은 단지 대상에 대한 호칭이 아니라 인생의 지향성과 생명활동의 궁극적 목표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대에게 님은 무엇인가요.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