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얻는 것이 많으면 그만큼 리스크도 높아지는 게 세상 이치다. G20 정상회의 준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21일 정부과천청사를 찾은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 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글로벌 위기로 국제경제의 주요 협의체로 떠오른 G20 정상회의가 위기가 잦아지면서 위상이 하락하면 개최국이자 의장국이었던 한국도 ‘잊혀진 주연’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이 기우(杞憂)가 아님은 역사가 보여 준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협의체를 모색하던 국제사회는 1999년 9월 G20 창설에 합의하고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1차 G20 재무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의 명맥은 유지됐지만 위기가 사그라지면서 점점 국제무대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그러다가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G20 협의체는 정상회의로 한 단계 격상돼 화려하게 돌아왔다.
결국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국격(國格) 상승의 지렛대로 삼으려면 G20 정상회의를 지속 가능한 세계 경제의 최고협의체로 만드는 일이 관건이다. 그래야만 한국이 국제무대의 ‘반짝 스타’가 아닌 계속 무대에 남아서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 자격으로 내놓을 어젠다가 그래서 중요하다. 사공일 위원장은 이를 ‘코리아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로 명명했다. 정부는 우선 한국 경제개발과 금융위기 극복의 경험을 모델화해 세계 각국과 공유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의 국제사회 데뷔 무대를 지켜보는 ‘수준 높은’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정부 및 G20준비위원회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 만한 의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G20 정상회의 개최를 국내외에 홍보하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G20 정상회의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더라’란 평가를 나중에 듣지 않았으면 한다.
박현진 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