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저)는 之와 於를 합한 글자다. 求諸己는 모든 일을 자기 책임으로 삼는 것, 求諸人은 나쁜 일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단, 정약용은 求諸己를 ‘仁의 단초를 자기에게서 찾음’으로 보고 이 章을 ‘顔淵(안연)’의 克己復禮章(극기복례장)에 연결시켰다. 공자는 克己復禮가 仁이라 말하고는 ‘爲仁(위인)이 由己(유기)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라고 했다. 그 ‘인을 행함이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지, 남으로부터 말미암겠는가’의 뜻이 求諸己와 같다고 본 것이다. 일설로서 갖추어 둘 만하다.
‘중용’은 선비들이 활쏘기에서 正鵠(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일이 군자답다고 했다. 군자의 求諸己를 활쏘기에 비유한 것이다. ‘맹자’는 남을 사랑하는 데도 그가 나와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仁을 돌이켜 보고, 남을 다스리는 데도 그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智를 돌이켜 보며, 남을 禮로 대하는 데도 그가 예로 답하지 않으면 자신의 敬을 돌이켜 보라고 했다. 곧 ‘反求諸己’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反求諸己는 병적인 自責(자책)이 아니다. 최한기는 反求諸己하는 데에도 過不及의 병폐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지적했다. 求諸己한다면서 증험할 수 없는 일에 심력을 쏟아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