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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음악의 천재, 영혼의 자유를 노래하다

입력 | 2010-01-26 03:00:00

뮤지컬 ‘모차르트!’
음악 ★★★★☆ 대본 ★★★☆ 무대★★★★




가부장-봉건질서에 맞서는
근대적 자아로 그려내

초호화 캐스팅-풍성한 음악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빈약

클래식 작곡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모차르트를 반항적인 록스타로 형상화한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의 한국어 공연. 사진 제공 EMK뮤지컬컴퍼니

밤하늘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의 일부가 음표로 바뀐다. 음표를 타고 피아노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다. 피아노를 구름처럼 타고 내려온 아이가 신들린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바로 음악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연출 유희성)는 그렇게 환상적인 무대연출로 시작한다. 하지만 18세기 유럽 전역에서 서커스 같은 공연을 펼치던 신동의 활약은 거기서 멈춘다. 다음 장부터 성인으로 등장하는 모차르트(임태경)는 클래식음악을 완성한 대작곡가도 아니고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묘사된 철없고 경박한 멍청이도 아니다. 그는 깜짝 관심을 받고 소비되는 신동이 아니라 음악사를 바꿀 천재가 되기 위해 시대와 투쟁하는 반항아다. 아니 혁명아다.

그 투쟁의 목표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의 소유권이다. 첫 번째 관문은 아버지다. 아들의 재능을 일찍이 발견하고 발현시킨 아버지 레오폴트(서범석)는 아들의 재능을 통제할 수 있도록 모차르트가 영원히 아이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두 번째 관문은 봉건질서다. 모차르트의 후견인이자 잘츠부르크의 영주인 콜로레도 대주교(윤형렬)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자신과 신의 영광을 찬미할 도구로 묶어두려 한다.

해어진 청바지를 입은 모차르트는 이에 맞서 열혈 로커처럼 노래한다. “나는 장조 나는 단조 나는 화음 나는 멜로디… 음악 속에 나는 박자 나는 쉼표 나는 하모니/나는 포르테 나는 피아노 춤과 환타지/나는 난 음악.”

뮤지컬은 그렇게 모차르트를 영혼의 자유를 꿈꾼 근대적 자아로 그려낸다. 그는 후반부에 짧게 등장하는 프랑스혁명의 전조(前兆)다. 모차르트는 프랑스혁명 발발 2년여 뒤에 숨을 거뒀다. 제목에서 모차르트의 이름 뒤에 느낌표가 들어가는 이유다.

이 뮤지컬의 매력은 그러나 이런 갈등구조의 뼈대보다 그것을 채우는 속살에 있다. ‘모차르트의 여인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래다. 모차르트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충고하는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신영숙)의 노래 ‘황금별’은 고결하다. 모차르트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음에도 동생을 하염없이 사랑한 누나 난넬(배해선)의 노래 ‘왕자는 떠났네’는 애절하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정선아)의 ‘난 예술가의 아내라’는 강렬하다.

주연급 뮤지컬 배우 10여 명이 투입된 초호화 캐스팅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배역의 다양한 사연과 절창이 이어진다. 이런 다성(多聲)적 구조는 확실히 음악적으로 풍성한 뮤지컬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빈약해졌다. 모차르트가 왜 특별한가에 주력하느라 그가 왜 파멸했는가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 단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상징하는 꼬마 분신 아마데(김효준)가 모차르트의 피를 잉크삼아 작곡을 하다 끝내 펜으로 심장을 찌른다는 상징적 표현에 머물고 말았다.

아버지 레오폴트와의 갈등에 주력하느라 정작 모차르트 인생의 팜 파탈인 콘스탄체와의 갈등을 본격화하지 못한 것이 그런 점에서 못내 아쉽다. 콘스탄체야말로 모차르트가 돌파해야만 했던 세 번째 관문으로서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이해 못한 대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2만∼13만 원. 2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월 26일∼3월 7일 대구 달서구 계명아트센터. 02-6391-633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