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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태현]지방선거가 외교 흔드는 세계화 풍경

입력 | 2010-01-27 03:00:00


나고(名護)는 일본 오키나와 북동부에 위치한 천혜의 휴양지로 2000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6만여 명의 인구가 주로 관광수입으로 살아간다. 그 작은 도시의 시장을 뽑는 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작년 9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민주당 정권이 집권한 이래 미국과 일본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해 온 후텐마 미군기지의 이전이 선거쟁점이 됐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반대파 후보가 찬성파 현 시장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그에 따라 기지이전 문제와 이를 둘러싼 미일 간의 갈등은 더욱 풀기 어렵게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이 세계 제1, 2의 경제대국임을 감안하면 이 작은 사건은 어쩌면 미래 세계질서에도 파장을 미칠지 모른다.
 애초에 문제의 발단은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의 집권전략이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일본식 ‘자주외교’를 표방하며 미일동맹을 오랜 금기에서 풀어놓았다. 우리나라도 바로 수년 전 같은 경험을 했다. 그때부터 고민했던, 세계화시대의 정치와 외교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흔히 하는 말로 오늘날 세계 관리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를 비롯한 삶의 외연은 지구차원으로 확대된 데 반해 정치는 여전히 국가 차원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즉 정치인을 뽑고 심판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한 나라 내부 문제이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많은 문제 중의 하나가 소위 정치적 책임성의 결핍과 괴리다.
 정책 결정은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을 직접 뽑고 어떻게든 심판하려고 한다. 그렇게 발전한 제도가 민주주의와 선거이다.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인은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국민의 반응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고 그렇게 해서 정책의 정치적 책임성이 확보된다. 세계가 통합됨에 따라 한 나라의 정책이 그 나라 국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국민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책임성의 결핍문제, 혹은 내부적 책임성과 외부적 책임성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일례로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할 때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안으로는 미국 국민의 안전을, 밖으로는 이라크 국민의 자유를 위한다고 했다. 2004년 그를 심판하는 선거에서 투표한 것은 물론 미국 국민만이었다. 세계가 지금처럼 주권적 국민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한 그 같은 괴리는 피할 수가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유럽연합은 유럽의회를 만들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데 경제문제는 크게 달라졌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에 대한 심판은 그 나라 국민만이 하지 않게 됐다. 무리한 정책은 시장이 심판한다. 바로 세계 도처에서 불특정 다수의 무수한 투자자가 알게 모르게 내리는 결정이 심판이다. 선거만을 의식한 포퓰리스트 경제정책이 설 땅을 잃게 됐다. 경제적 통합, 곧 세계화의 효과다.
 비슷한 효과가 외교정책에도 나타나고 있다. 외부적 책임성을 의식하지 않았던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는 국제 영향력의 약화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일왕에게 90도 고개 숙여 절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국력에는 하드파워만이 아니라 소프트파워도 중요하다며 스마트파워 외교를 주창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품격, 소위 국격에 대한 논의가 부쩍 늘어난 것도 그런 추세를 반영한다. 국격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탐하는 일관성 없는 포퓰리스트 외교정책이 설 땅은 크게 좁아진다. 정치인만 모르는 것 같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