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독립’ 결의에 묻힌 責任性
헌법학계 원로인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은 어제 신문 인터뷰에서 “사법부의 현재 상황은 사법의 이념화, 정치화, 복권화(福券化), 돌출화 네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원이 판사들에게 컴퓨터 추첨으로 사건을 배당하고, 일부 판사는 국민의 법의식 법감정과 동떨어진 상식 이하의 편향된 판결을 하는 데 대한 쓴소리다.
‘이런 행위를 하면 이런 벌을 받는다’는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면 법원과 판사를 믿기 어렵다. 같은 법 아래서 판사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리는 판결이 잦으면 법원은 빨간불 파란불을 동시에 켜는 신호등처럼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 같은 현상이 악화되면 ‘법 허무주의’가 팽배해지고, 법원은 법치의 수호자가 아니라 법치의 붕괴를 부추기는 존재가 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선량한 다수 국민이 결국 피해자가 된다. 대한민국이 그 지경에 이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이것이 ‘사법부의 책임성’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 대법원장이 국민의 이 같은 걱정을 감지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책임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사법독립과 사법책임은 사법을 지배하는 양대 원리다. 함께 구현해야 할 두 원리를 대법원장이 균형 있게 추구하지 않는다면 사법부 권력만 지키려 한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삼권분립(三權分立)의 뜻은 사법부를 치외법권적 존재로, 법의 수호자가 아닌 수혜자 집단으로만 남겨두는 데 있지 않다. 사법부도 넓은 의미의 정부의 일부로서 국민이 고통 받을 때는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한다. 법의 지배를 떠받치는 직분을 선택한 법관은 법 앞에 누구보다도 겸허해야 한다. 일부 판사가 ‘법 적용의 재량권’을 당연한 특권인 양 여기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풍조다. 판결은 엄밀한 의미에서 재량을 허용하지 않는다. 법관의 양심도 개인의 주관적 양심이 아니다.
사법독립 自害하는 ‘私조직 독립’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을 말할 때 ‘발밑을 먼저 보라’는 고언도 달게 들어야 할 것이다. ‘사법부’는 어디까지나 국민의 위임을 받은 법정(法定) 법원조직을 뜻한다. ‘우리법연구회’ 같은 사조직(私組織)은 구성원(판사 120명 안팎)이 사법부 안에 있다고 해서 사법부 그 자체일 수 없다.
우리법연구회는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일부로 공인된 적이 없다. 이런 사조직이 사법행정권 무력화나 이념적 편향 판결의 속출에 영향을 끼쳤다면, 그런 개연성만 있어도 ‘순수’연구모임이라는 주장은 궤변이다. 이 대법원장과 법원장들이 이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은 발밑에서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법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6년 임기동안 전국의 법원장과 판사 인사를 다 한다. 어느 의미에선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다. 그런 지위의 대법원장 밑에서 사조직이 번창한다면 ‘사법부의 독립’과 ‘사조직의 독립’을 분간하기 힘들어진다.
법원 내의 이런 이중구조가 온존하는 가운데 ‘저마다의 정의(正義)를 좇는’ 들쭉날쭉 판결이 이어진다면 사법감시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양형(量刑) 기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우수하고 건전한 법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판사가 법원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같은 판사 임용 및 배치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