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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맛!]감칠맛(우마미·Umami)

입력 | 2010-01-29 03:00:00

죽어서도 변치않을 ‘한국인의 DNA’




‘사람을 고향과 이어주는 끈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위대한 문화, 웅대한 국민, 명예로운 역사. 그러나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영혼에 닿아 있다. 아니, 위(胃)에 닿아 있다. 이렇게 되면 끈이 아니라 밧줄이요, 억센 동아줄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마음산책)에서>


사람 입맛은 질기다. 세 살 적 입맛이 여든까지 간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람이라도 입맛만은 꼴통보수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보드카라면 금세 몸이 달아오른다. ‘빵이 없으면 일을 못하고, 보드카가 없으면 춤을 못 춘다’며 발을 동동거린다. 한국인은 날마다 밥, 국, 김치를 먹는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잠은 아파트에서 자고, 옷은 서양 옷을 입어도, 입맛은 거의 그대로이다. 김치 된장 맛이 혓바닥에 불도장처럼 찍혀 있다.

의식주에서 ‘식(食)’은 DNA 같은 것이다. 한식은 한국인의 줄기세포이다. 그 속에 한국인만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한국인은 죽어서도 밥과 국이 있는 제사상을 받는다. 머릿속은 바뀌어도 배 속은 저승에 가서도 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여자프로골퍼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미국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먹을거리가 흔전만전 널려 있다. 그런데도 고향에 오면 앞 다퉈 떡볶이 순대 김밥을 찾는다. 그 매운 떡볶이를 정신없이 먹어댄다. 시장바닥이면 어떻고, 길거리음식이면 또 어떤가! 혀는 단순하고 위대하다.

나이 지긋한 일본인들은 우메보시(매실장아찌)에 사족을 못 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도시락에 넣어주던 그 맛. 씹으면 씹을수록 우러나는 그 ‘고향 맛’을 사무치도록 그리워한다. 한국인이 느끼는 김치 맛과 같다. 김치 맛은 방방곡곡 집집마다 다르다. 그 맛의 가짓수는 어머니의 수만큼 있다.

사람 혀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을 느낀다. 단 것은 살을 찌우고, 신 것은 뼈를 기른다. 짠 것은 맥을 뛰게 하고, 쓴 것은 기(氣)를 북돋운다. 남자는 단맛에 민감하다. 여자는 쓴맛에 예민하다. 매운 것은 맛이 아니다. 학자들은 그것을 ‘단지 톡 쏘는 통증’으로 분류한다. 매운 것이 혓바닥에 닿으면 얼얼해지는 까닭이다. 매운 것은 힘줄을 키운다.

‘제5의 맛’도 있다. 바로 ‘감칠맛(Umami)’이다. ‘오묘하고 깊은 맛’ ‘입에 쩍쩍 달라붙는 맛’ ‘혓바닥에 배어드는 맛’ ‘혀끝에 오래도록 남아 맴도는 맛’ ‘돌아서면 뭔가 아쉬움이 남는 맛’ ‘입안에 척척 감기는 맛’이 그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그 맛을 “개미(혹은 게미)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늘(숙성)이 있다”라고도 한다. 오래 묵고 삭아 ‘시김새(삭힘새)’가 있다는 뜻이다.

‘감칠맛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일본 도쿄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다. 그는 어느 날 두부전골을 먹다가 두부에 스며든 다시마국물 맛을 보고 그 맛이 무엇인지 연구에 매달렸다. 결국 그는 다시마국물에서 감칠맛을 내는 대표적 성분인 글루탐산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1913년엔 역시 일본의 고다마 신타로가 가쓰오부시에서 이노신산을, 1957년엔 구니나카 아키라박사가 표고버섯에서 감칠맛을 내는 구아닐산을 발견했다. 1985년 감칠맛의 일본어표현 ‘우마미(Umami)’는 국제공용어로 지정되었다.’

<김정은의 ‘감칠맛의 비밀’(랜덤하우스)에서>



갓난아이가 맨 먼저 느끼는 맛도 감칠맛이다. 엄마 젖에 우마미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마의 감칠맛과 비슷하다. 우유 먹는 아이는 감칠맛을 느낄 수 없다. 감칠맛이 나면 입안에 흥건히 침이 고인다. 위속에선 소화액이 솔솔 나온다.

감칠맛을 내는 것들은 멸치(이노신산+글루탐산), 다시마, 양파, 김(이상 글루탐산), 토마토(글루탐산+아스파라긴산), 양파(프로필메르캅탄), 가쓰오부시(이노신산), 마른 표고버섯(구아닐산), 마른 새우(아데닐산), 조개(글루탐산+아데닐산+호박산) 등이다.

이것들은 두 가지 이상 섞이면 더욱 오묘한 맛을 낸다. 밤새 우려낸 국물이나 육수가 맛을 좌우하는 까닭이다. 서양에선 토마토를 익히거나 양파를 갈아 소스와 수프를 만든다. 한국에선 ‘멸치+다시마’에 갖은 양념을 넣어 우려낸다. 일본에선 ‘가쓰오부시+다시마’를 많이 쓴다.

한식은 절이고 삭히는 발효음식이다. 맛이 오묘하고 깊다. 모든 맛이 하나로 녹아들어 황홀하다. 감칠맛이 새록새록 우러난다. 맛을 표현하는 말도 절묘하다. 뜨거운 국물을 한 입 뜨면서 ‘시원하다’고 말한다. 달면서 신맛이 나는 것은 ‘달새콤하다’ ‘시큼하다’ ‘새콤하다’ ‘시금털털하다’ ‘새콤달콤하다’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 것도 ‘들큰하다’ ‘달큰하다’ ‘달달하다’ 등 끝이 없다. 싱거운 것은 ‘슴슴하다’ ‘밍밍하다’ ‘맹맹하다’로 듣기만 해도 덤덤하다. ‘이탈리아나 프랑스군대는 병참에서 식량이 차지하는 비율이 양적으로 금전적으로도 커서 장기전에는 불리했다. 식사에 대해 일반병사들이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 반드시 풀코스로 음식이 하나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병사들이 불만을 드러내며 싸우려들지 않았다. 이는 근거 없는 속설이지만 거의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나 오늘날 미국이 강한 것은 맛없는 요리에 익숙한 덕분이 아닐까? 본국요리가 맛있다면 해외에서 장기주둔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마음산책)에서>

사서 먹는 ‘식당밥’은 ‘찰기’가 없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밥은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풀기라곤 하나도 없다. 어머니의 ‘집 밥’은 기름이 자르르하다. 감칠맛이 가득하다. 꽃 보자기에 덮여 아랫목에 모셔뒀던 아버지의 고봉밥. 하얀 사기그릇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나던 차진 밥. 저녁 늦게 들어와 “히야! 잘 먹었다!”며 숭늉 한 사발 걸쭉하게 들이켜고, 큰 트림하던 아버지.

병상의 아버지는 ‘양념간장으로 쓱쓱 비빈 콩나물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앞에 두자, 단 한 숟갈도 뜨지 못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힘없이 밥상을 물렸다. 아버지는 그 다음 날 눈을 감았다. 아, 그 동아줄처럼 질긴 입맛이여.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