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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예술가의 가난은 필연인가

입력 | 2010-01-28 20:00:00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조사대상은 문학 미술 대중예술 등 10개 분야 2000명이다. 눈길을 끄는 내용은 문화예술인의 소득이다. 전체의 37.4%가 문화예술 활동으로는 수입이 없다고 응답했다. 2006년 조사 때의 26.6%보다 더 늘어났다. 한 달에 200만 원 이하를 버는 문화예술인이 79.8%를 차지했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가난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거품 많은 ‘아트 러시’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문화예술계로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다. 이른바 ‘아트 러시(art rush)’ 현상이다. 과거 너도나도 금을 찾아 길을 떠났던 ‘골드러시(gold rush)’가 문화예술 세계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고교 졸업자 수만 명이 문화예술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고, 같은 수가 대학 공부를 마치고 사회로 나선다. 학업과 상관없이 대중문화 쪽 진출을 노리는 젊은이도 많다.

어느 분야에서나 지망생들이 꿈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법이지만 문화예술계는 특히 심하다. 성공한 소수가 전체 수익을 독점하는 경향이 가장 강한 세계가 문화예술계다. 천재적인 예술가에게 소비자들은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무한한 존경심을 표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 예술가는 시장에서 거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문화예술 상품의 특성상 구매자들은 예술가의 명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 ‘예술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다’라는 사회 통념이다. 예술의 고귀함, 위대함을 강조하는 고전적 가치관들은 가난한 예술가를 양산하면서 인력의 공급과잉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내 대학들이 졸업 후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문화예술 관련 학과와 정원을 마구 늘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요즘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자리에는 고학력 지원자들이 넘쳐난다. 다들 일만 시켜달라고 아우성이니 월급이 얼마인지는 별 고려대상이 아니다. 한 달에 100만 원도 받지 못하는 종사자들이 부지기수다. 거의 비정규직이거나, 일이 있을 때만 작업에 참여하는 불완전 고용 상태다. 청년 실업이 매우 심각하지만 문화예술 쪽은 차원이 또 다르다. 이런 상황은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기초적 생활여건이 확보되지 않은 형편에선 생산적인 창작활동이 이뤄질 수 없다.

문화예술 인력의 공급과잉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빠지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서 예술가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 등이 문화예술인에게 지원하는 돈은 연간 2500억 원에 이른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어설픈 지원 확대가 인력의 과잉 공급을 더 키울 수 있다. 부유층이 문화예술을 후원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성공한 예술가에게 후원 대상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막연한 낙관주의 빨리 버려야

브로드웨이의 히트 뮤지컬 ‘코러스라인’은 ‘문화예술 1번지’ 뉴욕을 무대로 예술가 지망생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그들의 꿈을 높이 사면서도 현실의 어려움에 같이 고뇌한다. 한국 문화예술의 숙제인 공급과잉 문제는 ‘코러스라인’에서처럼 지망생들이 예술에 대한 막연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체 교육과정을 통해 문화예술이야말로 대표적인 승자독식의 세계로서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곳임을 깨닫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재능이 없는 학생들에겐 아쉽지만 다른 길을 찾도록 해주는 여과 기능이 일찍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현실이 바로 보이면 예술가의 가난은 필연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