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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해석 북한學’ 전체 숲을 보라

입력 | 2010-01-29 20:00:00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겨냥한 해안포 사격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NLL 무력화를 위한 도발에서 평화협정 협상을 위한 압박, 심지어 해외수출을 위한 탄약 실험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6자회담 참가 요구, 평화협정 맺기 위한 전략, 남북대화 압박용의 3가지를 배경으로 언급했다. ‘해석 북한학’이라고나 할까. 북한이 도발이나 회담 제의를 하면 자동적으로 정부 당국자와 남북문제 전문가, 언론이 경쟁적으로 분석에 나선다.

합리적 우선순위 선택이 중요

남한 쪽의 제각각 분석을 감상하며 북한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남쪽에서 엉뚱한 분석을 하면 “헛소리 하고 있네”라며 비웃고, 정확한 평가가 나오면 허를 찌르는 다른 카드를 쓰려 하지 않을까.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어제 북한에 무력시위 중단을 요구하면서도 “북한의 무모한 시도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실패에서 기인한 바 크다”며 또 ‘정부 탓’을 들고 나왔다. 이런 반응도 북한이 좋아하는 분석일 것이다.

북한의 행동과 발언에 일일이 반응하는 수준의 해석 북한학에서 탈피할 때가 됐다. 나무 대신 전체 숲의 모습을 보려고 하면 북한의 속셈이 뻔히 보인다. 북한은 1일 신년사설에서 시작해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회담 제의, 보복성전(聖戰) 위협, 군사실무회담 제의, 우리 수역을 포함한 서해상 항행금지구역 선포, 해안포 발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쏟아냈다. 그만하면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은 강온전략,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사는 길’과 ‘죽는 길’을 어지럽게 뒤섞고 있다.

북한 정권의 속내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우리가 주려는 옥수수에 대한 대응이다. 북한은 옥수수 1만t을 ‘농부의 지게에 올려놔도 시원찮을 강냉이’라며 악담을 하다 돌연 받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북한이 자존심을 버리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한 것이다.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실무회담 제의에도 남한의 현금을 챙기려는 절박함이 담겨있다. 북한은 그러면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무력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3개월 전 서해상에서 우리 함정을 공격한 북한에게 NLL 너머로 포를 쏘는 일쯤은 사소한 무력행사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북한이 다양한 카드를 내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의 양상이 달라진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정상화다. 남북대화의 격과 급을 정상화해야 한다. 통일부는 25일 관광재개 회담을 수정제의하며 북한의 통일전선부를 상대로 지목했다. 통일부의 북한 파트너는 대남주무기관인 통전부가 되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장관이 가고 북한은 한참 격이 떨어지는 내각참사가 나오는 남북장관급 회담의 비대칭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북핵 해법 찾는 정상회담이라야

이 대통령이 연내 개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남북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정상회담은 국가 사이에 가장 크고 어려운 현안을 다루는 회담이다. 남북 사이라고 다를 게 없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은 1,2차 회담과는 달리 북핵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회담이라야 가치가 있다.

두 번째는 남북 접촉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는 것이다. 북한 관광은 이산가족 상봉, 납북자와 국군포로 석방보다 시급한 현안이 아니다. 이산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영영 상봉의 기회가 사라진다. 세상을 떠나기 전 혈육을 만나려는 이산가족의 염원 보다 금강산과 개성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의 욕구가 우선할 수는 없다. 합리적인 우선순위의 선택이야말로 남한이 북한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분야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