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스포츠영화 중 하나인 ‘19번째 남자’의 한 장면.
스포츠영화 중 열에 아홉은 극적인 승리로 끝난다. 나머지 하나의 대부분은 아름다운 패배로 감동을 극대화한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의 99%%는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의 인생드라마가 담겨져 있다. 그런 면에서 1990년 개봉한 론 쉘톤 감독의 영화 ‘19번째 남자’(원제 Bull Durham)는 특별한 스포츠영화다. 극적인 승리도, 인생역전도 없다. 오히려 성공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쓸쓸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19번째 남자’는 최고의 스포츠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40대 남성들이 이 영화에 열광한다. 그 이유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 깊은 여운 때문이다.
‘19번째 남자’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야구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에 메이저리그 경기나 선수는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 메이저리그 경기장이 잠시 등장할 뿐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배경은 배고픔과 불안함 그리고 절망감이 한 가닥 희망과 뒤엉켜있는 마이너리그다.
노장포수 크래쉬(케빈 코스트너)는 트리플A 더햄 불스에 영입된다. 크래쉬는 연일 홈런을 펑펑 날리지만 감독이나 팀은 그의 타격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팀이 크래쉬에게 원하는 건 95마일(153km)의 강속구를 가졌지만 제구력은 형편없는 신인투수 에디(팀 로빈스)의 조련이다. 크래쉬는 마이너리그 역대 최다홈런 기록에 다가가지만 역시 아무도 관심이 없다.
크래쉬의 열정을 다한 노력에 힘입어 에디는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 하지만 팀은 그와 동시에 임무가 끝난 크래쉬를 방출하기로 한다. 크래쉬는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마이너리그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는 순간 유니폼을 벗는다.
크래쉬의 홈런기록은 아무런 영광도 환호도 없다. 대신 가슴 아픈 비애가 잔뜩 묻어난다. 그러나 홈런이 하나하나 쌓이는 동안 그가 마이너리그에서 보냈을 인고의 시간이 주는 감동은 관객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와 닿는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