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격언: 대중은 항상 틀린다]
신용융자 잔액 급증은 증시과열 신호
옛말 새겨 ‘최후의 바보’ 되지 말길
증권업계에 처음 입문했을 때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들은 얘기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직전 나중에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의 부친은 큰 규모의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케네디 부친이 즐겨 찾던 단골집의 구두닦이가 “나도 모아놓은 돈으로 주식을 사고 싶으니 종목을 하나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케네디 부친은 그 길로 자신의 보유 주식을 전부 처분했다. 주식에 관심이 없던 구두닦이까지 주식을 사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아 이제 주식 시장은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한 것이다. 얼마 후 주가는 폭락했고 대공황이 시작됐다. 케네디 부친은 결국 이 구두닦이 덕분에 손실을 용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이 얘기가 다시 떠오른 것은 몇 년 뒤였다. 1989년 4월 한국 주식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종합주가지수 1,000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전국은 투자 열기로 한껏 들떠 있었다. 나 역시 회사에서 받은 우리사주의 주가가 매일 오르는 것을 보며 덩달아 들뜬 기분이었다. 그 당시에는 트로이카주라고 불리는 금융, 건설, 무역주들이 주도주로 부각되며 연일 주가가 치솟았고 5만 원에 육박하던 우리 회사 주가도 조만간 10만 원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팽배했다.
위의 두 사례에서 우리는 ‘최후의 바보 이론’을 생각할 수 있다. 증시에서 사람들이 주식을 사는 것은 누군가 나보다 바보인 사람이 내가 산 가격보다 비싸게 내 주식을 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최후의 바보가 될 것인가?
‘대중은 항상 틀린다’라는 증시격언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증시에는 많은 참여자가 모여 주식시세를 형성한다. 이들은 같은 규모의 자금, 같은 양의 정보, 같은 투자경험이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즉 천차만별의 투자자들이 모여 매일매일 주식시세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은 외국인투자가일 수도 있고 기관투자가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일부 개인투자자일 수도 있다. 그들이 소위 ‘스마트 머니(smart money)’라고 불리는 이들로 증시의 흐름을 선도하거나 증시의 큰 흐름을 잘 따라잡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시장의 흐름을 뒤늦게 쫓아다니면서 뒷북을 친다.
최근 증시의 신용융자 잔액이 급증하며 5조 원대에 육박했다. 이는 시장을 낙관적으로 본 개인들이 뒤늦게 뛰어들어 외상으로 주식을 많이 산 결과이고 증시 과열 신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월가의 속담 중에도 ‘주식시세는 99%의 어리석은 사람들의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와 1%의 영리한 사람의 금고로 흘러 들어가는 과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증시에서 대중이 돈을 벌기가 힘들다는 뜻일 것이다. 증시 참여자치고 ‘99%의 어리석은 사람’ 쪽에 속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1%의 영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품고 증시에 뛰어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투자가 거듭될수록 99%의 어리석은 사람 속에 속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박용선 SK증권 리서치센터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