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이었다. 그런 말이 대기업 총수가 아니라 노조위원장에게서 나올 줄은 몰랐다.
“빌 게이츠는 ‘자본주의가 가진 자 중심의 부(富) 축적으로 가면 안 된다.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큰 감명을 받아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습니다.”
LG전자 노조가 지난달 28일 국내 최초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을 발표할 때 박준수 위원장이 한 말이다. 불황기에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LG전자의 노조원은 우리 사회 88만9000명(공식 집계 기준)의 실업자에 비하면 ‘가진 자’임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로 하여금 스스로를 빌 게이츠의 반열에 놓고 경영자의 시각에서 회사와 사회를 걱정하게 한 배경은 뭘까.
그 전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계열사 신임 임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경영자에게는 신의(信義)가 생명”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나 사회 지도자도 아니고 변화무쌍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너무 잘 아는 최고경영자가 신의를 강조한 것이다.
구 회장은 평소에도 “경영자는 약속을 신중하게 해야 하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해 왔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뒤숭숭하던 2008년 말 구 회장은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거나 안 뽑으면 안 된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이날 구 회장은 ‘배려’도 강조했다. 임원들이 먼저 직원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직원들은 결코 임원에게 다가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20년 무파업의 전통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는 ‘1등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의 상상력이 필요하다’며 ‘자율과 창의’를 강조하는 경영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세상이 워낙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가치’를 기업이 먼저 제시하기 위해서는 리더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수의 창의력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1등이 되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거나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기 쉬운 사회,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마저 네 편 내 편으로 나뉘어 싸우는 몰지각한 세상에서 LG는 새로운 모델을 창조해나가고 있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