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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도 내 실력…주변시선 신경 안써
일본어로 인사하니 다들 감탄사 연발
첫시즌 특별한 목표 보다는 주전 사수”
스프링캠프를 하루 남겨둔 31일, 그의 방은 막 도착한 짐으로 어수선했다. ‘태균(TAEKYUN)’과 52번이 박힌 새 유니폼, 헬멧, 스파이크, 그리고 방망이 등 야구 장비들이 제법 넓은 방을 꽉 채우고 있었다. 특히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인 미트 6개가 시선을 고정시켰다.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주섬주섬 미트를 챙기며 “이제 시작하는데 철저히 준비해야죠”라고 무심코 건넨 한마디에서 일본무대에 진출하는 그의 다부진 각오가 묻어났다.
○난 언제나 100%%, 만약 못 해도 그건 내 실력
일본에서는 김태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특급투수들의 볼을 거침없이 쳐내던 한국의 거포에 대한 관심이 예상 밖으로 높았다. 개중에는 시기 어린 시선도 섞여있다.
하지만 김태균은 “괜찮다. ‘이구치 사건’은 왜곡된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쓰면 야구 못한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받는 과도한 주목이 적잖은 부담일 텐데도 “난 그냥 한국에서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의 곧은 성격은 야구 스타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누가 물어보면 지금 몸 상태를 60%%라고 하고 시즌 때 깜짝 놀라게 해줘라”며 편법(?)을 귀띔했지만 “나는 설령 몸이 좋지 않아도 늘 100%%라고 말한다. 야구를 못 한다고 해도 내 실력”이라며 정공법을 택했다. 경쟁자 후쿠우라 가즈야와 오마쓰 쇼이쓰 얘기에도 “그런 것 상관 안 하고 내가 잘 하면 주전을 꿰차지 않겠냐”며 주위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김태균의 성격은 팀 적응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30일 오후 선수단 미팅에서 그는 “곤니치와. 하지메마시테. 와타시와 김태균데쓰.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김태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일본어로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비록 서툰 발음이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선수단은 감탄사를 쏟아냈다는 후문. 주장 니시오카 쓰요시는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김태균의 말투를 흉내 내며 친근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1일 궂은 날씨로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된 훈련에서도 그는 선수들과 간단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며 스스럼없이 다가갔다. 김태균에게 지금 가장 아쉬운 점은 “농담을 건넨 후 나는 이미 웃고 있는데 통역을 한 차례 거쳐야 해서 상대방의 반응이 뒤늦게 온다”는 것. 일본 땅을 밟은 지 채 한 달이 안 됐지만 “장난을 치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하니까 답답하다. 일본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하냐”고 호소할 만큼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이다.
○목표? 없다. 야구 잘 하면 계속 기용될 것
물론 그가 일본어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야구를 잘 하기 위해서’다.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팀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고, 그래야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 그렇다고 과욕을 부리지는 않았다. 지난해 뇌진탕 후유증을 딛고 밟게 된 감격의 일본무대, 첫 시즌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김태균은 “특별한 목표가 없다”고 했다. 대신 “내가 잘 하면 감독이 나를 기용할 것이고 내가 못 하면 2군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진리인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겨 넣고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키나와(일본)|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