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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미술 행복한 동행…박범신 작품 형상화한 안종연 전

입력 | 2010-02-02 03:00:00


박범신 씨의 소설에서 받은 영감을 시각언어로 표현한 안종연 씨의 설치작품 ‘빛의 에젠’.  사진 제공 학고재 갤러리

“내가 쌀을 주었으니 당신이 그것으로 떡을 만들든, 밥을 짓든 하시오.”

소설가 박범신 씨(64)는 미술가 안종연 씨(58)와의 첫 만남에서 말했다. 그때가 2007년. 그 결실을 3∼2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시간의 주름(groove of time)’전에서 선보인다. 50대 남성이 겪은 극한적 사랑을 그린 ‘주름’과 김정호의 삶을 다룬 ‘고산자’ 등의 소설을 안 씨가 조형 언어로 풀어낸 평면과 영상, 설치작업 60여 점을 볼 수 있다. 02-720-1524

전시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사뭇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나를 텍스트로 했지만 한 일이 없다. 그런데 뿌듯하다. 내 상상력의 본원이 한 화가의 손끝에서 낱낱이 해체되고 의미 있게 조합되며, 마침내 전혀 새로운 창조력으로 빛의 지평을 여는 것을 가까이서 보았다.”(박 씨) “그동안 혼자 장 보고 혼자 요리했다면 이번에는 함께 장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한 기분이다.”(안 씨)

밑그림에 에폭시를 붓고 다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 바이칼 호의 깊이를 표현한 ‘바이칼의 에젠’을 비롯해 색색의 스테인리스스틸을 전동 드릴로 한 점 한 점 쪼아 형상을 드러낸 작품과 빛을 담은 유리구슬 설치작업 등은 생멸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헌사를 담고 있다. 전시에 선보인 작품의 제목은 소설 목차와 하나로 포개지며 자연스럽게 소설 속 여정이 재현된다.

“선생님 소설에서 생성과 소멸을 읽었다. 매 순간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또한 매 순간 떠나보내는 것처럼 힘겨운 순간이 지나가면 즐거운 순간이 오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매 순간 순간이 생성되면서 소멸하고 소멸하면서 생성된다. 한순간도 같은 적은 없다. 매 순간 빛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만화경처럼.”(안 씨)

“개인적 취향은 따뜻한 양식의 예술을 좋아하지만 안종연 작가의 작품은 새로웠다.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다. 작업 과정을 보면서 ‘프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안주할 양반이 아니다. 나 역시 나이 먹어도 현역으로 늙어죽을 거다.”(박 씨)

장르는 다르지만 두 작가는 치열한 열정이란 점에서 닮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