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씨의 소설에서 받은 영감을 시각언어로 표현한 안종연 씨의 설치작품 ‘빛의 에젠’. 사진 제공 학고재 갤러리
소설가 박범신 씨(64)는 미술가 안종연 씨(58)와의 첫 만남에서 말했다. 그때가 2007년. 그 결실을 3∼2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시간의 주름(groove of time)’전에서 선보인다. 50대 남성이 겪은 극한적 사랑을 그린 ‘주름’과 김정호의 삶을 다룬 ‘고산자’ 등의 소설을 안 씨가 조형 언어로 풀어낸 평면과 영상, 설치작업 60여 점을 볼 수 있다. 02-720-1524
전시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사뭇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나를 텍스트로 했지만 한 일이 없다. 그런데 뿌듯하다. 내 상상력의 본원이 한 화가의 손끝에서 낱낱이 해체되고 의미 있게 조합되며, 마침내 전혀 새로운 창조력으로 빛의 지평을 여는 것을 가까이서 보았다.”(박 씨) “그동안 혼자 장 보고 혼자 요리했다면 이번에는 함께 장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한 기분이다.”(안 씨)
“선생님 소설에서 생성과 소멸을 읽었다. 매 순간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또한 매 순간 떠나보내는 것처럼 힘겨운 순간이 지나가면 즐거운 순간이 오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매 순간 순간이 생성되면서 소멸하고 소멸하면서 생성된다. 한순간도 같은 적은 없다. 매 순간 빛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만화경처럼.”(안 씨)
“개인적 취향은 따뜻한 양식의 예술을 좋아하지만 안종연 작가의 작품은 새로웠다.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다. 작업 과정을 보면서 ‘프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안주할 양반이 아니다. 나 역시 나이 먹어도 현역으로 늙어죽을 거다.”(박 씨)
장르는 다르지만 두 작가는 치열한 열정이란 점에서 닮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