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문학 공부에서 훌륭한 비평적 능력을 키우는 일은 치열한 독서 경험과 의견 교환 및 열띤 토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의 비평적 판단 능력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참된 비평적인 능력을 기르는 토론 문화가 부재해서이다. 교실에서 학생이 감정의 개입 없이 이성적으로 상대방과 참된 토론을 하면 자기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계발하는 결과도 얻는다.
그러나 학생들은 습관적으로 자기 의견을 발표하기를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사 수와 공간 부족 같은 열악한 교육 환경으로 토론보다 주입식 교육에 길든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권위주의적인 유교 문화와 복종을 강요하는 일제 식민지 정책의 후유증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광복 이후 지금까지 치열하게 전개됐던 이념 갈등이 낳은 집단이기주의가 개인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너무나 심하게 봉쇄했기 때문일 것이다.
타협과 양보는 패배 아닌 승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소통 부족으로 일어난 분열 현상은 지역적으로는 물론이고 이념적으로 극에 달해 있다. 영호남의 고질적인 분열에 이어 충청권마저 수도권과 분열하는 양상을 보인다. 패권주의 정치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현상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이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갈등하는 것은 지극히 슬픈 일이다. 국민들은 이제 정치인이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개인의 정치적인 이익만을 위해 국론을 갈라놓는 것에 분노한다.
문제의 발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시인했듯이 국익보다 개인의 정치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빚어낸 세종시 문제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보인 견해차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국가 장래를 위해 세종시를 교육과학도시로 만들려 하고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세종시법 원안을 고수하려 한다.
두 지도자의 주장은 모두 정당하다. 그러나 국정을 원만히 이끌고 가기 위해 고뇌하는 이 대통령은 친박(친박근혜)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고, 대권을 꿈꾸는 박 전 대표는 현실적인 정치 문제 때문에 충청권 표심이라는 포퓰리즘의 덫에 걸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는 “민주 사회에서 정치가의 위치는 항상 위험이 가득하다. 왜냐하면 백성의 뜻만 추종하려고 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게 되며, 백성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의 손에 망하기 때문이다”라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종시 문제도 마음 열고 토론을
국민은 한나라당이 친이, 친박을 초월해서 자유로운 토론의 장(場)을 마련하면 틀림없이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해결 방안이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 나라를 위하는 일에 감정적 앙금은 금물이다. 타협과 양보는 패배가 아니라 변증법적 승리이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