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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곽민영]“남자가 무슨” 눈총… 육아휴직 숨기는 아빠들

입력 | 2010-02-03 03:00:00

‘직장내 1호’ 용기냈던 30대, “주변서 알면…” 인터뷰 사양
작년 남성 육아휴직 502명… 그들이 떳떳할 날은 언제쯤




국가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A 씨는 직무상 10대 비행 청소년을 자주 만났다. 대부분이 문제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가정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상처를 입는다는 걸 절감했다.

1년 전쯤 A 씨의 둘째아이가 태어났다. 아내가 전업주부였지만 A 씨는 과감하게 1년간의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A 씨의 직종에서는 초유의 남성 육아휴직이었다. 일부에서 말렸지만 A 씨는 용기를 냈다.

육아휴직 기간에 A 씨는 아빠가 된 뒤 처음으로 두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힘이 닿는 한 아이를 더 낳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A 씨는 최근 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기자는 그가 육아휴직 기간 ‘아빠’로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듣고 싶었다. 4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지방에 있는 그를 찾아갔다.

A 씨는 자기 이야기가 신문에 소개되는 것을 한사코 사양했다. 직무와 관련된 일도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단다. 승진에서 뒤처질 위험까지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낸 그였기에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A 씨는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주변을 취재해 보니 그의 고민이 전혀 이유 없는 건 아니었다.

A 씨의 직장이 아직도 남성 중심의 엘리트 조직이긴 하지만 동료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A 씨에 대해서는 의아하다는 시선이 많았다. 휴직을 핑계로 공부하려는 게 아니냐, 남자까지 육아휴직을 해 버리면 일은 누가 하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사실 A 씨의 직장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육아휴직을 내는 남성은 ‘소수자’다. 사회와 조직으로부터 편견의 대상이 된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한 여성은 3만4898명이었지만 남성은 502명에 불과했다는 노동부 통계가 잘 보여준다.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과 야마구치 가쓰오 석좌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 남편의 육아 참여 시간이 6∼8시간인 가정은 둘째 아이를 가진 비율이 37.5%에 이른다. 그러나 2시간 이하인 가정의 경우는 22.2%밖에 되지 않는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처럼 남녀가 가정에서 평등하고 아버지의 육아 참여가 활발한 나라는 출산율도 높다. 남성의 육아 참여와 출산율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는 A 씨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지 않는 대신 그의 ‘무사 복귀’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남성의 육아휴직이 ‘개인적’인 일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사회적’인 일로 인식되길, 그래서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 소수자들의 커밍아웃이 많아지길 기다린다.

곽민영 오피니언팀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