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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두 불량국가의 화폐 ‘개혁’

입력 | 2010-02-03 20:00:00


남미의 베네수엘라는 1월 8일 ‘블랙 금요일’ 자국통화 평가절하 정책을 전격 발표했다. 생활필수품 수입 때 환율을 달러당 2.15볼리바르에서 2.60볼리바르로 17%, 생필품이 아닌 상품은 4.30볼리바르로 50% 평가절하 했다. 11일 월요일부터 시작이라는 방송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상점으로 몰려갔다.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은 “물건값을 올리면 상점을 몰수한다”며 지키고 섰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물가가 두 배로 치솟아 민심이 흉흉해졌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2일 집권 11년을 자축하며 “앞으로 11년은 더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차베스의 조치는 방만한 국정운영으로 텅 빈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다. 그래야 원유 수출로 버는 외화 수입이 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은 고유가와 함께 차베스의 인기도 고공 행진했지만 글로벌 위기 이후 달라졌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차베스는 시장과 기업 때리기에 골몰해 석유산업 투자는 뒷전이었다. 세계 8위의 산유국인데도 물과 전기가 턱없이 모자라 주유소가 줄줄이 문 닫았다. 사람들의 구매력도 11년 전보다 떨어졌다.

▷그나마 베네수엘라에선 사람이 굶어죽는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북한은 작년 11월 헌 돈과 새 돈을 100 대 1로 바꾼 뒤 쌀값이 10배 이상 뛰는 초(超)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있다. 대북인권단체 ‘좋은 벗들’은 “함경남도 단천시에서 굶어죽은 사람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시장을 단속하던 보안원과 주민들이 싸움을 벌인 끝에 한 주민이 무기를 빼앗아 난사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 후계자 계승을 위한 정지작업은 실패로 결론이 나는 것 같다.

▷두 ‘불량국가’는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화폐가치 절하정책을 단행했다. 두 나라 모두 무엇보다 살인적 인플레를 잡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노동자를 보호한다며 최저임금 25% 인상(베네수엘라)과 임금 100배 인상(북한) 조치를 함께 내린 것도 공통적이다. 두 독재정권은 입만 열면 노동자를 위한 경제를 말하고 있지만, 화폐 개혁으로 물가가 폭등하면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