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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대회때 첫 완주… 동아마라톤은 내 인생의 스승”

입력 | 2010-02-04 03:00:00

■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특별기고




1991년 제62회 동아마라톤 때 일이다. 당시 처음 풀코스에 도전했던 나는 김재룡(한국전력) 이창우(코오롱) 등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 30km 지점에서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순간 ‘계속 달려야 하나’ 고민했다. 마라톤 선수는 한 번 넘어지면 밸런스가 무너져 좋은 기록이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코오롱 선배들을 위해 끌어주고 빠지자’는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나 전력질주로 선두권에 다시 합류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배들이 오히려 나를 잘 따라오지 못해 할 수 없이 끝까지 달렸다. 나는 첫 레이스에서 김재룡(2시간12분34초) 선배에게 1초 차로 뒤진 3위를 했다. 이창우 선배는 가슴 하나 차이로 2위가 됐다.

그때까지 공식 경기론 역전경기에서 15km를 뛴 게 가장 길었고 훈련 때 30km 정도를 소화한 게 전부였던 마라톤 문외한인 내가 완주를 하며 그것도 3위를 할 줄은 나 자신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3위 상품으로 받은 세탁기를 결혼하는 누나에게 선물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아마라톤은 나를 일약 한국 마라톤의 기대주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를 발판으로 나는 그해 7월 열린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몬주익의 영웅’이 됐다.

동아마라톤은 내 마라톤 인생에서 큰 스승 같은 존재다. 겨울 훈련을 끝낸 뒤 3월 열리는 대회에 국내 모든 마라톤 선수들이 출전해 기량을 점검한다. 그만큼 기록도 잘 나와 동아마라톤은 기록의 산실로 불렸다. 그래서 엘리트 선수들은 꼭 뛰어야 할 필수 코스였다. 요즘에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도 안 뛰면 ‘왕따’ 당하는 대회로 알려졌다.

한국 마라톤의 젖줄 역할을 한 동아마라톤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최고 인증인 골드 라벨 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 기뻤다. 한국 최고의 마라톤이 이제 세계 최고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도 느낀다. 더욱더 발전해 한국 마라토너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길 기대한다.<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