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에서>
과연 그런가? 삼겹살은 아무나 굽는 게 아니다. ‘불판권’ 있는 자만이 고기를 뒤집을 수 있다. 술자리의 ‘병권(甁權)’을 쥔 자와 같다. 삼겹살은 너무 뒤적거리면 퍽퍽해진다. 육즙이 다 빠져 감칠맛, 깊은 맛이 달아나버린다. 많아야 두 번으로 끝내는 게 좋다. 한쪽이 거의 익었다 싶을 때, 딱 한 번 뒤집는 고수가 진짜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아야 한다.
삼겹살은 돼지 뱃살(Pork belly)을 말한다. 돼지 갈비뼈를 떼어내고 난 뒤, 복부의 넓고 납작한 부위가 삼겹살이다. 살과 비계가 세 겹으로 겹쳐보여서 삼겹살이라고 부른다. 아 참, 오겹살도 있다. 오겹살은 ‘돼지껍데기가 붙어 있는 삼겹살’이다. 돼지껍데기 부분이 두툼해서 언뜻 보면 다섯 겹쯤으로 보인다. 껍데기 씹는 맛이 쫄깃하다. 고소한 맛도 삼겹살보다 더하다. 한번 맛 들인 사람들은 혼이 나간다.
중국에선 삼겹살을 ‘오화육(五花肉)’이라고 부른다. 하얀 비계와 붉은 살이 어우러진 게 마치 꽃처럼 보였나 보다. 서양 베이컨(Bacon)도 삼겹살을 소금에 절여 훈제한 것이다.
삼겹살은 보통 돼지 한 마리에 10∼13kg 정도 나온다. 몸무게의 10% 선으로 그리 많지 않다. 2008년 한국인 한사람이 먹은 돼지고기는 19.6kg이다. 이 중 절반가량인 9kg이 삼겹살이다. 200g을 1인분으로 치면 한 사람이 평균 45인분을 먹어치운 셈이다. 소주는 삼겹살과 ‘실과 바늘 사이’. 2008년 한국인 한 사람 소주 소비량은 72.5병(360mL)이다. 단순하게 소주와 삼겹살로만 따진다면, 한 사람이 소주 한 병 마실 때마다 삼겹살 120g을 먹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 712만 명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와 삼겹살’이었다. 삼겹살은 보통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 사이에 먹기 시작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피가 펄펄 끓던 20대 시절에, 전국 산하가 삼겹살 굽는 냄새로 코를 찔렀다. 그들은 그렇게 그 거친 80년대를 건너왔던 것이다. ‘삼겹살’이란 단어는 1944년 비로소 국어사전에 올랐다. 호적에 정식으로 등록된 것이다.
집에선 프라이팬에다 구웠지만 기름이 튀었다. 식빵을 넣어 빨아들여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음식점에선 귀퉁이에 구멍이 뚫린 네모꼴철판을 썼다. 기름은 그 구멍으로 빠졌다. 사람들은 삼겹살을 다 먹은 뒤 그 철판 위에 밥과 묵은지, 파무침, 김 가루 등을 섞어 볶아 먹었다. 좀 느끼했지만 고소한 맛이 혀끝에 남았다.
석쇠와 돌판, 심지어 어디서 구했는지 맨홀뚜껑에 구워먹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석쇠는 기름은 잘 빠졌지만 기름때 씻는 게 만만치 않았다. 돌판은 달아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맨홀뚜껑은 누가 뭐래도 엄연히 불법이다.
가마솥뚜껑은 한 차원 다른 불판이었다. 보기도 좋고 기름도 잘 흘러내렸다. 고기가 불판에 잘 달라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장수곱돌불판 게르마늄불판 방짜놋쇠불판이 나오더니 요즘엔 ‘가스 불 직화 오븐’까지 등장했다. 직화 오븐은 기름이 튀지 않고 연기와 냄새가 없다.
요즘은 별의별 삼겹살이 다 있다. 고기를 얇게 썰어 물을 먹인 뒤 얼려서 빳빳하게 만든 대패삼겹살, 와인숙성 삼겹살, 녹차삼겹살, 훈제삼겹살, 떡삼겹살…. 결국 삼겹살은 비린내를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열쇠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문종수 씨는 “삼겹살을 굽기 전, 염도 1.2% 정도의 소금물에 20∼30분 담가놓으면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짧은 한평생이라는데/가도 가도 끝이 없구나//안경알을 닦으면/희미하게 생각나는/지난 일들//가다가가다가 서글퍼/주저앉으면/안경알 저쪽에/희미하게 떠오르는/짧은 희망//다시 가다가 문득/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그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박이도의 ‘한 세상’에서>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리면 가슴에 밀물처럼 헛헛함이 밀려온다. 발밑에 차이는 ‘허허 쓸쓸함’의 아수라장. 밑도 끝도 없는 인생. 가도 가도 황톳길. 지글지글 노릇노릇 삼겹살을 구우며 소주를 붓는다. 눈이 휙휙 돌아가는 세상. 이제 소주와 삼겹살의 약효는 끝났다.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 이 시대를 건널 수 없다. 문득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떠오른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