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린 땀방울 서말에 메달 한개..
태릉선수촌 김인건 촌장. 동아일보 박영대 기자
2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챔피언하우스.
이날 이곳에서는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2월13일~3월1일)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이 열렸다.
박성인 단장을 비롯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 등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결단식에서는 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가 낭독되는 등 분위기가 자못 엄숙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동계올림픽 때 10위에 오른 한국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에서 6위, 1998년 일본 나가노 대회에서 9위,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14위,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대회에서는 7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과연 톱 10 수성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그동안 대표 선수들의 훈련 현장을 지켜온 태릉선수촌 김인건(66) 촌장을 만나 들어봤다.
김 촌장은 "'흘린 땀만큼 성적이 나온다'는 진리가 통한다면 이번 선수단이 목표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4년 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금 6, 은 3, 동메달 2개로 7위에 올랐지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이강석이 딴 동메달을 제외하곤 모두 쇼트트랙 한 종목에서 나와 종목쏠림이 심했다.
이번 밴쿠버에서는 어떨까.
김 촌장은 "토리노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했던 여자 쇼트트랙은 세대교체의 여파에 중국의 맹추격으로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남자의 이규혁과 이강석 모태범, 여자의 이상화가 메달을 따낼 게 분명하고 대회 막바지에 피겨 여왕 김연아가 예상대로 무난히 금메달을 따준다면 과거 대회에 비해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면서 종합 10위권 내 성적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촌장은 경복고와 연세대를 거치며 농구 국가 대표선수로 이름을 떨쳤고 남자농구대표팀 감독을 거쳐 삼성전자, SK, SBS 농구단 감독을 역임한 농구인.
김 촌장은 "1966년 태릉선수촌이 생겼을 때 농구 국가대표로 입촌한 적이 있고 이후로도 선수와 지도자로 여러 차례 들락날락 했다"며 "당초 선수촌은 군 훈련소 못지않게 기강이 엄격하고 외출도 거의 나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들어와 훈련하고 싶어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국제 스포츠 훈련소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대표선수들이 태극 마크를 달았다는 자부심으로 스파르타식 훈련을 견뎌냈다면 요즘 선수들은 열심히 해야 명예와 부를 얻는다는 실리적인 생각에 힘든 훈련도 즐기듯 하는 경향이 있다"며 "오히려 이런 태도가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데에는 알파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단식이 끝난 뒤 김 촌장은 취재 나온 50여 명의 신문, 방송 관계자들을 선수촌 식당으로 안내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선수촌에 들려도 식당에는 발조차 들일 수 없었다. 당시 정부가 기자실에 '대못'을 박아 폐쇄하는 등 취재 환경이 경직된 분위기에서 선수촌 취재도 여의치 않았던 것.
오랜만에 먹어본 선수촌 점심. 외부의 어지간한 뷔페식당에서 먹는 음식과 별 차이가 없었다.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향상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표선수들도 호텔 급의 특별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김 촌장은 "선수들의 건강을 위해 음식 재료나 조리 과정 등은 최고로 관리를 하고 있지만 특별히 비싼 음식을 먹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지원을 잘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운 점을 들라면 훈련 일수가 10~20여일 더 늘어났으면 하는 것"이라며 "기초 종목이나 메달 유망 종목 선수들이 거의 1년 내내 선수촌에서 훈련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들 수당도 300만 원 대인데 좀 더 인상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촌장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선수촌 훈련 방식의 과학화. 국가대표 선수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현장 지도자와 체육과학연구원과의 연계를 통해 과학적 선수 관리의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김 촌장은 "선수들은 현재 3개월마다 한 번씩 체력 및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있고 이를 데이터화 하고 있다"며 "이를 토대로 현장 지도자와 체육과학연구원이 의견을 주고받고 훈련에 적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탄생한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장미란과 박태환"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선수촌 운영은 밴쿠버동계올림픽과 11월의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 맞춰져 있다. 밴쿠버동계올림픽은 일단 일정이 끝났고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2위 수성을 목표로 세워놓고 있다.
김 촌장은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일본에 앞서 종합 2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종합 2위 달성이 목표"라며 "이를 위해 향후 선수촌 모든 운영 계획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농구인 출신인 김 촌장이 한 가지 염려하는 부분은 한국 남자농구가 다른 종목에 비해 준비가 미흡하다는 점.
한국남자농구는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까지 했지만 지난해 8월 제 25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사상 최초로 4강에도 들지 못한 것은 물론, 7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김 촌장은 "농구대표팀에 전임 감독을 두는 게 급선무인데 전혀 이런 움직임이 없어 안타깝다"며 "프로 시즌이 끝나자마자 선수촌에 입촌해 다른 종목 선수들처럼 강 훈련을 한다면 남자농구도 해볼 만 할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