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식지 경쟁, 생존력 키우고
굴 배설물은 멍게에게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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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 혼합 양식 도입 실험
3, 4년 뒤 국내산 크게 늘 듯
국립수산과학원 양식환경연구소 실험실에서 굴과 함께 6개월 정도 성장시킨 멍게. 이렇게 키운 멍게의 자손은 2년 뒤 실제 바다에서 굴과 함께 튼튼하게 자랐다. 사진 제공 국립수산과학원
○ 쪼그랑증과 물렁증에 시달리는 멍게
수온 상승이 적은 해저 30m에 사는 멍게에게는 물렁증이 치명적이었다. 한창 성장할 시기인 4∼6월에 껍데기가 흐물흐물해지며 죽는 이 병은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수산과학원 양식환경연구소 허영백 박사는 “원인을 찾는 데 2, 3년을 매달렸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멍게의 생존력을 높이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바꿨지만 처음에는 막막했다. 게다가 연구를 시작했던 2006년은 멍게 양식이 5, 6년째 실패하며 어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극에 달할 때였다. 3년산 멍게의 알을 가져다가 1년 정도 키워서 새끼멍게(씨앗)를 만드는 멍게 종묘마저 바닥을 보였다. 울분에 찬 어민들을 허 박사와 동료 연구원들은 일일이 찾아다녔다.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경험에서 나온 어민들의 지혜가 필요했다. 그곳에서 연구원들은 공통적인 목격담을 들었다.
“저 꿀(굴) 양식장서 보이, 꿀에 부티사는(붙어사는) 멍기(멍게)는 안 죽능기라.”
사실이었다. 지척에 있는 멍게 양식장이 물렁증으로 큰 피해를 봤는데도 굴 양식장에 붙어사는 자연산 멍게는 멀쩡했다.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굴과 멍게를 함께 키워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지난해 4월 통영 앞바다에 만든 시험용 어장에 둘의 혼합양식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에도 가까운 양식장은 물렁증이 찾아와 멍게 대부분이 죽었지만 시험 어장의 멍게는 죽음의 4∼6월을 견디고 70%나 살아남았다. 이대로 계속 성장한다면 올해 4월에는 시장에 내놓을 만큼 커질 것이다.
허 박사는 굴과 함께 자란 멍게의 생존력이 강해진 이유를 다른 종과의 경쟁과 공생 때문으로 보고 있다. 굴이나 멍게는 같은 종끼리 집단생활을 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다른 종과 섞이면 서식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강하게 만든다.
게다가 굴과 멍게는 먹이가 달라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작은 플랑크톤을 먹는 굴과 달리 멍게는 비교적 큰 입자의 먹이를 펄과 함께 흡수한다. 허 박사는 “소화기관이 단순한 굴은 먹은 것의 40%를 그대로 배출한다”며 “입자가 크면서도 영양분이 농축된 굴의 배설물은 멍게에게 최고의 먹이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들이 멍게에게 추가로 주는 철분 사료도 어민의 목격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패류의 아파트인 ‘어초’는 폐어선에 철근을 감아 사용하는데 철근에 붙어사는 자연산 멍게는 쪼그랑증이나 물렁증에 잘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철 성분이 멍게의 면역력을 높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허 박사는 “이 방식이 계속 성공할지 살펴봐야 한다”면서 “혼합양식을 한두 차례 더 시험한 뒤 실제 양식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어민들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이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며 “어민들의 아이디어와 지혜를 검증해 현실화하는 것이 수산과학자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