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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소설

입력 | 2010-02-05 03:00:00


《“만천하가 열광적으로 환영 애독하든 ‘단종애사’는 끗을 막게 되엇습니다. 우리 춘원 리광수씨는 얼마 동안 휴양하야 다시 장편소설 ‘군상’을 쓰게 되엇습니다. 씨의 찬란한 필치와 웅대한 구상과 심각한 인생관이 다시 군상을 동하야 우리로하야금 생각케하고 웃게 하고 울게할 것입니다. 지면에 나타나는 그날을 기다립시다” ―동아일보 1929년 12월 17일자》

신문마다 장편 연재
민족의식 고취 위해
역사소설 붐 일기도


이광수의 ‘무정’(1917년), 홍명희의 ‘임꺽정전’(1928년), 염상섭의 ‘삼대’(1931년), 심훈의 ‘상록수’(1935년)….

우리나라 소설사에서 비중 있게 평가받는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나온 작품이란 점이다. 이 장편소설들은 주로 신문 연재를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신문 연재소설은 문예활동이기도 했지만 일제강점기 신문의 특성상 일종의 사회사업적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은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계몽적인 작품이 많았다.

1910년대 이광수의 ‘무정’은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이자 연애소설이고 춘원의 출세작이었다. 매일신보에 연재(1917년 1월 1일∼6월 4일)될 당시에는 화제만큼이나 논란도 컸다. ‘부도덕한 작품’이라는 중장년 독자층의 비난을 반박하는 연설회가 열리기도 했다. 유림은 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에 무정의 연재를 중단시켜 달라는 진정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시대사조를 반영해 청년남녀의 신연애관과 이에 따른 번민과 갈등을 옮겨놓은 장편이 잇따라 선을 보였다.

역사소설 붐과 함께 장편소설이 본격 창작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였다. 1920년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지면에 발표된 소설은 모두 171편이었지만 1930년대에는 282편으로 늘어났다. 심훈의 ‘상록수’, 이광수의 ‘흙’ 같은 농촌소설이나 이기영의 ‘고향’ 같은 프로(프롤레타리아) 작품도 나왔지만 역사소설이 가장 인기를 얻었다. 임화는 동아일보에 1938년 4월 1일부터 5회 연재한 ‘세태소설론’에서 “역사적 현실이 우리들의 문학의식과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작가는 신소설을 역사의 현실을 빌어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어두운 시대 현실에 대한 문학적 동기가 역사소설의 유행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신문 외에 잡지 ‘조광’ ‘문장’ ‘신동아’ ‘삼천리’ 등에도 장편소설이 연재됐다. ‘단종애사’를 쓴 이광수, ‘운현궁의 봄’과 ‘연산군’을 쓴 김동인 외에 조명희, 박종화, 이태준 등도 역사소설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암울했던 시기 사회적 역할과 오락으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맡으며 독자들과 호흡했던 장편소설은 현대에는 팩션(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소설), 칙릿(20대 젊은 여성 취향의 가벼운 소설) 등 새로운 형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랫동안 단편소설이 중심이 됐던 한국소설은 최근 인터넷 소설 연재와 장편소설 공모전의 증가 등에 힘입어 다시 한 번 장편소설 호황기를 맞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