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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나눔과 열림

입력 | 2010-02-06 03:00:00

Agape(M-12), 오현철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어떤 재산가가 자신을 ‘억대 거지’라고 표현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의 가난은 면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환자를 고치는 의사가 자신을 마음의 병자라고 표현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재산이나 명예, 권력을 지닌 사람도 자신의 인생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남이 들으면 배부른 푸념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외형적인 성공이나 성취가 반드시 인생의 성공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오직 성공과 성취만 중시하는 목표 제일주의 경향이 강하지만 실제 인생에서는 성공과 성취 이후의 삶을 어떻게 펼쳐가는가에 따라 인생의 전체적 의미가 달라집니다. 성공하고 성취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이 곧 인생의 기쁨과 보람으로 직결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공과 성취는 개인적인 차원의 이룸입니다.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남과 경주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뤄냅니다. 돈을 벌고 자격을 얻고 명성을 얻는 일이 모두 그것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성공과 성취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뒤부터는 자신의 전문성을 세상과 공유하고 나누는 일에 써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의사가 된 사람은 자신의 의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해야 합니다. 나눌 줄 모르는 재산은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이바지할 줄 모르는 전문성은 단지 돈을 버는 기술로 전락합니다.

성공과 성취는 세상으로 나아가 이바지하고 기여해도 좋다는 훌륭한 자격을 의미합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을 세상과 나누는 일에 골몰하는 건 그것이 성공과 성취보다 훨씬 소중하고 값진 차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물적 가치로 바꿀 수 없는 근원적인 기쁨과 보람이 있고 그것은 세상을 밝히는 광휘로 되살아납니다. 세상에 성공하고 성취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세상을 밝히는 발판이나 거름으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얻고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삶, 자신 안에 갇힌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기쁨과 보람은 성공과 성취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발판 삼고 거름 삼아 세상에 이바지하고 기여할 때 비로소 온전한 생명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눔이고 그것이 공존입니다. 나눔을 통한 공존, 공존을 통한 나눔은 생명세계의 근원적인 그물망입니다. 반드시 성공하고 성취해야만 나눔과 공존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개인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로 삼으면 보람과 기쁨의 근거가 절로 눈을 뜹니다. 우리는 모두 ‘나’라는 낱단위에서 출발하지만 나눔과 공존의 의미에 눈을 뜨면 ‘작은 나’는 죽고 모두가 하나 되는 우주적 자아가 눈을 뜹니다. 나누는 마음, 그것이 곧 모든 것을 여는 마음입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