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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세종시, ‘+α’부터 먼저 하자

입력 | 2010-02-07 20:00:00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세종시에 관해선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원안+α’ 고수 의지가 확고하다. 민주당은 ‘α를 추가하지 않는 원안’에 기울어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MB)도 임기 중에는 수정안에서 물러설 뜻이 전혀 없어 보인다. 현재의 의석구도로는 세종시법 수정안의 국회 통과가 불가능하다. MB 정부로서는 수도권과 충청 민심의 추이를 지켜보며 지공(遲攻)작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종시법이 원안 그대로 유지되든 수정안으로 가든, 앞으로 3년 동안 세종시의 틀 잡기는 MB 손에 달렸다. 정부 부처 일부를 세종시로 옮기는 구체적 계획은 법률에 규정된 사항이 아니고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시다. 노무현 정부의 이전 계획은 2012∼2014년 3년 동안 14부4처2청을 순차적으로 옮기는 것이었지만 MB 정부의 조직 개편으로 이전 대상이 9부2처2청으로 줄어들었다. 행안부는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중앙행정기관의 이전계획 변경 고시를 당연히 했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미루고 있다. 쉽게 말하면 2012년에 이전을 시작할지 2013년에 시작할지 계획도 세워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행안부는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이전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행정부처 이전과 관련된 공사와 업무가 중단되다시피 해 지금 당장 재개하더라도 2012년에 부처 이전을 시작하기는 어렵게 돼 있다. 2012년은 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다. 부처 이전이 지연되면 자연스럽게 공은 차기(次期) 대통령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차기 대통령이 꾸릴 정부조직과 이전 계획을 물러가는 대통령이 짜놓는 것도 순리가 아니다.

2012년 이전계획 맞추기 어렵다

대형 국책사업이 몇 해씩 늦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경부고속철도는 개통 목표가 1998년이었으나 설계 변경과 건설비 증가로 200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이전 개통으로 수정됐지만 이것도 지키지 못했다. 결국 2004년에 1차 구간(서울∼대구)이, 올해 비로소 전 구간(서울∼대구∼부산)이 개통된다. 행정수도 분할과 같은 대역사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열한 토론과 검증을 거치는 것이 국력의 낭비를 줄이는 길이다.

국토계획은 현실적합성 효율성 합리성을 따져야 한다. 새만금은 본래 전두환 전 대통령 때 미래의 쌀 부족에 대비해 농지조성 목적으로 구상됐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옛날에 밀주로 단속했던 쌀 막걸리를 정부가 앞장서 권장하는 실정이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새만금 사업 종합실천계획은 농지 비중을 당초 72%에서 30%로 대폭 낮추었다. 장구한 시일에 걸쳐 추진되는 국토계획은 현실의 변화에 맞추어 원안을 수정해나가는 것이 국가적 국민적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새로운 도시가 틀을 잡으려면 대체로 10∼20년이 걸린다. 세종시가 지금은 꽉 막혀 출구가 없는 것 같지만 도시의 모습을 동태적(動態的)으로 파악하면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시작된 분당 일산도 원래 구상과는 다른 도시가 됐다. 일산은 초기에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베드타운이었지만 지금은 경기 서북부지역의 거점도시가 됐다.

세종시 원안은 노무현의 대선공약에서 비롯됐고 한나라당이 충청표를 의식해 수동적으로 끌려간 안이다. 결국 ‘노무현 대못’으로 후퇴하는 안을 신뢰라는 말로 포장할 일만은 아니다. 세종시의 큰 그림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에 달렸다. 당당하게 ‘원안+α’를 내걸고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되고 국민의 지지까지 받는다면 행정부처 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민주당 후보 모두 마찬가지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세종시의 ‘원안+α’는 표심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노무현과 이회창이 격돌했던 2002년 선거 때와 양상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수도권 주민이 세종시 문제에 10년 전보다 민감해졌다. 세종시라는 떡도 엄청나게 큰데 ‘+α’까지 불어나면 비(非)충청 지역의 박탈감을 키울 수도 있다. ‘영남+충청=필승’ 혹은 ‘호남+충청=불패’ 같은 정치공학은 점점 원적지(原籍地) 뿌리의식이 약해져가는 수도권의 젊은 표심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세종시 원안 차기 넘기는 게 순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수정안은 통과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MB도 ‘3년 동안 원안 추진은 없다’고 버티면 그만이다. 세종시를 현상고착적(現狀固着的)으로 다루면 접점(接點)을 찾을 수 없다. 박 전 대표의 ‘원안+α’를 분리해 MB가 ‘+α’를 먼저 하고 ‘원안’은 차기 대통령에게 넘기는 동태적 해결책을 추구한다면 각 정파가 큰 상처를 입지 않고 타협안을 찾아낼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α’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