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국가부도 위기, 미국의 은행규제, 중국의 긴축이라는 해외발(發) 3대 악재에 노출된 한국 증시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기업들이 내놓는 지난해 4분기 성적표로만 보면 주가가 오를 상황이지만 해외 악재가 충격을 던질 때마다 증시는 맥을 못추고 있다. 코스피는 올해 1월 21일 고점(1,721) 대비 9%나 떨어졌다. 증시를 달궜던 두 축인 경기회복과 유동자금 중 어느 것도 힘을 내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이 10% 밑으로 떨어지면서 지난해 8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내는 등 경기회복에 대한 긍정적 지표들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국가부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아 주가가 혼조세를 겪은 뒤 다시 반등을 모색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인, 안전자산 찾아 이탈
외국인은 올 들어 여전히 순매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악재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 주식을 대량 매도하고 있다. 5일 유럽 위기가 불거졌을 때 2996억 원, 지난달 22일 미국 은행규제안이 발표됐을 때 4920억 원, 지난달 13일 중국의 지급준비율 인상 발표 때 이틀에 걸쳐 3808억 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외국인의 이러한 매매패턴은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해질수록 더 뚜렷해져 한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원선 토러스투자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중국의 긴축이나 유럽의 재정위기는 예상했지만 미국의 은행규제는 예상 밖 변수"라며 "자본시장에 대한 제한조치가 자꾸 나오면 안전자산 선호현상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어 한국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글로벌 자금 중 아시아 관련 펀드 비중은 지난해 말 22.7%였지만 3일 현재는 7.4%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줄었다. 이 가운데 한국 관련 펀드 비중은 20~30% 정도다.
●"빠질 만큼 빠졌다" 진단도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9.2배 수준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수준까지 낮아진 상태. PER가 낮다는 것은 주가가 기업실적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뜻으로 선진국 PER는 통상 15~16배다. 이주호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PER로 보면 이미 증시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기 때문에 투자심리가 나아지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학균 SK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국가들의 재정문제는 유럽연합(EU)의 지원으로 해결할 만한 규모"라며 "코스피가 이미 고점 대비 10% 가까이 떨어진 상태에서 추가 하락할 위험은 그리 크지 않아 투매에 동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김재영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