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g 쌀 한톨에 담긴 ‘문명 DNA’ 해독”
5일 전북대 인문한국 쌀·삶·문명연구원 연구원들이 연구원의 세미나실에서 전북 임실군의 농가에서 발굴된 1920년대생의 농사꾼이 작성한 일기를 함께 읽으며 당시의 전북 지역 농촌 실상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쌀 중심지였던 지역문화를 연구해 세계의 쌀 문화와 비교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전주=허진석 기자
금강의 영향-정미소 역할 등
벼농사 중심지 문화적 특성 살펴
“한-중-일 농촌 마을도 비교
아시아 문화 원형 찾아낼 것”
인문한국 쌀·삶·문명연구원 연구원들은 전북 지역 곳곳을 직접 답사하며 쌀 문화와 관련된 지역 특성을 조사하고 있다. 금강 주변 마을의 촌락 구조를 현지 조사하고(위쪽) 마을에서 지내는 동제(洞祭)도 연구한다. 사진 제공 인문한국 쌀·삶·문명연구원
2007년 11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 연구 지원사업으로 출범한 이 연구에는 문화인류학 지리학 철학 사회학 역사학 농업경제학 문학 등을 전공한 연구교수 20명, 전북대 교수 16명, 연구원 26명이 참여하고 있다.
전북의 쌀은 지역의 종교 문화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덕 연구원장(고고문화인류학 교수)은 곡창지대인 전북에 기독교가 유독 더 강력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 “평야지대를 더 강력하게 지배했던 일제가 동네 제사인 ‘동제(洞祭)’를 엄격히 금하면서 다른 지역보다 기독교가 확산되기 좋은 여건을 갖췄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순열 전북대 교수(농업경제학)는 “근대 초기 전북에는 다른 지역보다 10년이나 일찍 우수 벼 품종이 도입됐고 농업기술도 뛰어났지만 춘궁농가와 소작 비율이 높았다”며 “이는 일본인 지주에 의한 지주경영의 발달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앞으로 지역 연구를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몽골 지역의 연구와 결합해 아시아인의 삶과 문명을 읽는 재료로 만들 계획이다. 안 교수는 “16, 17세기에도 한국과 중국, 일본 등 3국은 농법을 공유해 저지대 개간이라는 공통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지역 특색에 따라 물을 관리하는 문화는 다르게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인류가 처음 벼를 재배한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 윈난(雲南) 성 일대의 조사와 일본 도쿄 인근을 흐르는 도네(利根) 강 유역 연구, 베트남 메콩 강 인근의 쌀 문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농촌 문화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발전했다. 그 속에서 각 문명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 교수는 “쌀 생산을 위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전북의 불이농촌, 일본 홋카이도와 중국 만주의 개척마을을 비교해 농촌 촌락 형성의 원형을 찾고 있다”며 “이를 북미 서부 개척 시대의 농장제와 비교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전북과 세계 각 지역의 문학과 신화, 종교를 아우름으로써 ‘동양과 서양’이 아닌 ‘쌀과 밀’의 문화권 세계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