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1억3000만 명의 농민공이 있다. 매년 단 한 번 춘제(春節·한국의 설) 때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구이동이다.”
지난해 말 네덜란드의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라스트 트레인 홈(last train home·歸途列車·귀향열차)’에는 이런 자막이 나온다. 이 다큐는 중국인 감독이 3년에 걸쳐 한 농민공 가족을 촬영한 것이다. 농민공은 호적과 가족을 농촌에 두고 도시에서 일하는 중국의 비숙련 노동자를 뜻한다. 중국에서 이 다큐는 아직 개봉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고편과 기사 등으로 접한 내용에서 중국이 당면한 농민과 농민공 문제를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주인공 40대 부부는 빼어난 경치를 지닌 쓰촨(四川) 성의 시골마을 출신. 부부는 1990년 친척에게 어린 자식들을 맡기고 수천 km 떨어진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로 향했다. 이곳 봉제공장에서 매일 15시간 재봉틀을 돌린다. 희망은 고향에 두고 온 자식들이 열심히 공부해 부모의 고통스러운 삶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큰딸은 2007년 부모처럼 봉제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일주일 전부터 중국은 춘제 분위기로 떠들썩하다. 모든 역과 터미널은 귀성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번 주 일요일 춘제를 앞두고 연인원 수십억 명이 이동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기차표 구매실명제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신분증을 등록해 기차표를 한 사람당 한 장만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광저우와 선전, 둥관 등 중국의 수출기지이자 농민공들이 집중 분포된 지역에서 시범 실시 중이다. 돌아오는 표에 대한 실명제도 농민공 고향이 산재한 후난(湖南) 성과 구이저우(貴州) 성, 쓰촨 성, 충칭(重慶) 등에서 실시한다. 농민공의 귀성길을 배려하려는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농민공을 위한 전용열차를 준비했다. 수년 전 일부 지방정부가 처음 실시한 전용열차는 베이징(北京)과 랴오닝(遼寧) 성,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등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베이징만 해도 농민공 약 40만 명이 회사의 단체표 구매를 통해 전용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또 춘제 전에 농민공 월급을 지급하라고 독려하는 정책도 잇따르고 있다.
농민공에게 춘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또 중국 정부에도 농민공의 귀성은 남다른 관심의 대상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7억2000만 명)이 농민이고 중국 경제는 농촌과 농민공의 희생 위에 발전해 왔다. 중국 정부는 올해를 포함해 7년 연속 새해 첫 문건에서 농민과 농민공 문제를 언급했다. 그만큼 이 문제를 중시하지만 도농 간 소득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또 농민공의 대우나 근로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사회불안 요소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춘제에서 중국의 미래가 여전히 농민에게 달려 있다는 점을 문득 깨닫는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