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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잡이 이미지 바꾸는 데 오래 걸렸죠”

입력 | 2010-02-09 03:00:00

주연 저우룬파 e메일 인터뷰



사진 제공 프리비젼


2001년 미국 아카데미 4개 부문(촬영, 미술, 음악, 외국어영화)을 수상한 '와호장룡'의 무당파 고수 리무바이 역 이후 10년간 배우 저우룬파(周潤發·55)의 경력은 '물음표'였다.
누더기 입은 승려('방탄승'), 영화 중간쯤 볼품없이 죽어버리는 지저분한 해적 두목('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호색한 무술인('드래곤볼 에볼루션')으로 전락한 이 183cm 쾌남아의 모습은 성냥개비를 씹으며 쌍권총을 휘두르던 카리스마를 기억하는 1980년대 홍콩느와르 팬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다. 하지만 7일 동아일보에 보낸 이메일에서 그는 "단 한 명이라도 내 새로운 모습에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라고 답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적벽대전'에서 주인공 주유 역을 맡았다가 포기한 데 대해 비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 배우 일을 하는 사람이다. '드래곤볼'의 내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 관객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특히 아내가 그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예전의 모습을 사랑해 준 팬들의 기대에 대한 책임감은 없는지.
"한국 영화 팬이 가지고 있는 내 이미지가 어떨지 일단 궁금하다. 느와르를 많이 찍었을 때 중국 사람들은 내가 안주머니에 늘 총을 넣고 다닐 거라고 오해하곤 했다. '공자' 끝 부분을 보면 '내 글을 통해 후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또 오해할 것'이라는 독백이 나온다. 내 영화는 나를 총잡이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 고정관념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리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내가 갱스터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가족과 스태프들, 촬영 현장을 찾아온 팬들이 '저우룬파가 공자 역에 잘 어울린다'고 격려해 준 데서 큰 용기를 얻었다. 그만큼 이번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만만찮았다."

-처음에는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사극은 익숙하다. 하지만 공자는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위인이다. 호메이(胡¤) 감독은 '각본상 공자의 나이가 배우 나이와 비슷해서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더라.(웃음) 논어나 다른 텍스트 자료보다는 현장에서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나눈 대화가 커다란 도움이 됐다. 감독은 늘 내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 줬다. 후반부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는 장면에서 말을 끌다 넘어져 허탈하게 웃는 장면은 그런 의논 과정을 통해 빚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공자가 웃는 설정이 없었다. 몇 번 넘어지고 나니 공자의 씁쓸한 심정이 잘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제안을 했다. 촬영 기간 내내 감독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몸에 맞는 옷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 입은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국(大國) 이미지'를 애써 강조하는 듯한 내용이 주변 나라 관객에게 껄끄러운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내 이미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줘서 정말 고맙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려 애썼다. 주어진 상황에서 공자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어떤 감정을 품었을까. 일일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면서 연기했다. '공자'라는 영화가 그저 하나의 영화로서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길 바랄 뿐이다."

-논어를 꼼꼼히 읽어야 했을 텐데 특히 마음에 새긴 구절이 있는지.
"공자가 책 한 권 읽어서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일까.(웃음) 이번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논어뿐 아니라 다른 책도 많이 읽었다. 논어 중에는 제12편 '안연(顔淵)'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모든 이가 곱씹어봐야 할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