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고발 이후… 산부인과 전전하는 임신 10대들“자립 어려운데 아이 낳으면학습기회 뺏기고 빈곤층 전락”vs“10대 낙태는 전체 3.6% 불과사회경제적 이유로 허용 안돼”
경기 부천시 A산부인과 원장은 최근 “의사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라며 울먹이는 14세 여학생을 고민 끝에 돌려보냈다. 이 여학생은 술에 취한 채 동네 남학생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덜컥 임신이 되었다. 임신 6주차에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산부인과 7곳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낙태를 거부했다. 이 여학생은 “기초생활수급자인 엄마와 살고 있고 엄마가 암에 걸려 내가 간호를 해야 한다”며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아니라고 매달렸다.
A산부인과 원장은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한 번의 실수로 임신한 미성년자에게 성장할 기회조차 뺏는 것이 맞는 건가 싶었다”며 “미혼모라는 짐을 지고 사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지…”라고 말했다.
태아의 생명권이냐, 미성년자의 성장권이냐.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최근 낙태 시술이 의심되는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를 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전전하는 미성년자가 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묻는 전화가 하루 2, 3통씩 걸려 오고 있다”며 “전에는 이런 전화가 온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산부인과 인터넷 게시판에는 “병원들이 낙태를 꺼리면서 모험 수당이 붙어 낙태 비용이 2배 비싸졌다”는 고민 글이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의 낙태를 막으려면 실효성 있는 피임 교육을 하고 미성년자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혼모 시설인 애란원의 한상순 원장은 “여기 미혼모의 25%가 미성년자로 그만큼 미성년자가 출산 후 자립하기 힘들다”며 “아이를 키우며 학교를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양육비와 검정고시 학습비 등 연 154만 원을 지원하는 청소년 한부모가족 자립지원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