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 공방’ 급기야 청와대까지 전면에“실체 묻히고 공방만 부각”설 민심 영향도 고려한 듯“朴, 대통령 다 된걸로 생각”친이핵심 정두언도 ‘강공’
청와대가 11일 ‘강도론’ 논란과 관련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정면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고 나서는 ‘강공 모드’를 택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세종시 수정 문제 등에서 박 전 대표가 여러 차례 반대 태도를 분명히 하는 데 대해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공개적인 비판은 자제해왔다. 전날에도 박 전 대표의 ‘강도’ 발언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긴 했지만 사과를 요구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전날 “(집안 내 강도 발언은) 특정 인물을 지목한 게 아니다”라는 해명도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확전(擴戰)을 감수하겠다는 듯 박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전후관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묻히고 양측의 싸움만 부각되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 이날 오전 청와대 참모진 회의에선 “강도론 논란의 근원적 책임은 박 전 대표에게 있는데도 청와대가 변명하고 진화에 나선 것처럼 언론에 비치고 있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가야 한다” “대통령 권위 훼손을 묵과할 수 없다” 등의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이 수석은 이번 사건을 ‘실언(失言) 파문’으로 규정하고 “진화는 발화를 한 사람이 하는 것 아니냐”고 일갈했다. 사실 청와대는 전날부터 이번 파문은 박 전 대표의 ‘오버’ 대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박 전 대표와의 정면대응은 자제하는 쪽이었다. 여기엔 확전이 될수록 이 대통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려는 박 전 대표 측의 의도에 휘말리게 된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 청와대가 전날 “박 전 대표가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대응기조를 유지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책임 소재가 분명히 가려지지 않고 오히려 이 대통령이 이번 강도론 파문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인 것처럼 비치자 강공책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10일 박 전 대표의 강도 발언을 보고받고 “허허” 하며 웃은 것으로 전해진 이 대통령이 11일 오전 언론 보도를 접한 뒤엔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어제 오늘 사이에 갑자기 생각이 바뀐 것은 없다”라며 “다만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당장 설 연휴 여론도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번 설 연휴를 세종시 수정 논란의 분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강도론이 불거졌고 양측 간 감정싸움 양상만 부각되면서 세종시 홍보전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설 연휴 기간 전국에서 세종시 문제와 강도론 문제가 화제에 오를 텐데 ‘서로 싸운다더라’가 아니라 ‘알고보니 박 전 대표가 심했다더라’라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선 청와대가 처음부터 박 전 대표의 해명과 사과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친이(친이명박)계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차제에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에게 막말을 하는 것을 보니 박 전 대표는 마치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며 “박 전 대표가 과거의 제왕적 총재보다 더하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진수희 의원도 “여당의 지도자가 전후 사정과 맥락을 살피지도 않은 채 대통령을 강도에 빗댄 것은 정치적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며 “박 전 대표가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