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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에 사는 사람들]부산 다문화 대안학교 ‘아시아공동체학교’ 지원 정산 스님

입력 | 2010-02-13 03:00:00

“코피노는 우리 책임… 종교 뛰어넘어 보살펴야”

필리핀 소년의 적개심에 충격
올해는 해외 다문화운동 주력
比에 코피노 위한 유치원 세울것




부산 남구 용당동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동명불원 주지인 정산 스님이 강조하는 종교의 역할은 다문화 가정 지원이다. 그는 부산에 하나뿐인 다문화 가정 대안학교인 ‘아시아공동체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종교 간 벽을 허물었다. 아시아공동체학교는 국제결혼 가정 자녀, 이주 노동자 부모를 둔 자녀 등을 위한 대안 초등학교.

지난해 4월 25일 동명불원과 인근 대연동 못골성당, 아시아공동체학교는 자매결연식을 가졌다. 결연은 정산 스님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종교계가 나서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다문화 가정 자녀에게 도움을 주자”고 제안하자 시민운동 동료인 조동성 요셉 신부가 흔쾌히 응했다. 그 뒤 동명불원은 다문화 가정에 템플 스테이, 불교문화 강좌를 무료로 제공했다. 올 상반기(1∼6월) 중 부산 금정구 남산동 이슬람교 부산성원과도 다문화 가정 지원 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다문화 가정 가운데 불교, 천주교 신자도 있지만 이슬람교도도 많습니다. 가정생활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세 종교계가 이들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많습니다.”

정산 스님이 다문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필리핀인과 결혼한 친형의 영향이 컸다. 현재 필리핀에 살고 있는 형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다문화 가정을 이해하게 됐다. 자신이 직접 다문화 운동에 나선 결정적 계기는 필리핀에서 어느 코피노(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 소년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천주교, 이슬람교 성직자들과 함께 다문화 가정 지원에 나선 부산 동명불원 주지 정산 스님. 스님은 올해 필리핀 남부 다바오에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들을 위한 유치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부산=최재호 기자

“그 소년이 대뜸 제게 ‘우리 아빠는 한국인입니다. 날 버리고 한국으로 갔습니다. 내가 큰돈이 생겨 한국으로 가게 되면 아빠를 반드시 찾아 총으로 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복수심에 불탄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많은 걸 느꼈습니다.”

현재 필리핀에는 1만 명가량의 코피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산 스님은 올해부터 다문화 운동의 방향타를 해외로 돌리기로 했다. “정부와 언론의 관심으로 국내 다문화 가정 지원은 정착 단계입니다. 하지만 코피노 등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낮습니다. 이들은 한국인의 피를 가진 한국인입니다. 이들이 한국인 2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고 현지 친한파(親韓派)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역시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운동입니다.”

스님은 올해 안으로 필리핀 남부 다바오에 코피노를 위한 유치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현지 교민과 함께 일부 설립 자금과 유치원 터도 마련했다. 책과 옷가지, 일부 생활비, 유치원비도 무료로 지원할 예정이다. 코피노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돼도 현지 미혼모들이 가난해서 학교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해 길거리에 방치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종교계가 함께 나서서 한국어 교육 책자를 만들거나 고등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교육비를 지원하는 등 반짝 지원이 아니라 자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계획이다.

“코피노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도 우리는 아직 그들을 외국인으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코피노라는 말이 생긴 것은 우리 책임입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도와주고 보살펴야 할 때입니다. 불교계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사랑으로 해외에 있는 코피노 등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