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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50년]“피로 쓴 民主, 그 소중한 歷史”

입력 | 2010-02-16 03:00:00

당시 본보사진집 ‘민주혁명의 기록’으로 본 그때

두달간의 현장 283장 사진에 초판 10여일만에 동나기도
아이젠하워 1960년 방한때 사진집 보며 큰 관심보여




사진집 보는 아이젠하워 1960년 6월 19일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왼쪽 사진 왼쪽)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으로 오는 전용기 안에서 동아일보 사진집 ‘민주혁명의 기록’ 중 28쪽에 있는 태극기에 덮인 김주열 군의 시신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민주혁명의 기록’ 표지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 발표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 이 사진집은 동아일보 사진기자들이 취재한 사진 등을 모아 동아일보가 4·19혁명 36일 만인 6월 1일 발간한 것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60년 6월 19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한국에 오는 전용기 안에서 한 책자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4·19혁명이 일어난 지 한 달여가 지난 1960년 6월 1일 동아일보가 발간한 타블로이드판 52페이지의 사진집 ‘민주혁명의 기록(Struggle for Democracy in Korea)’이었다.

전용기에 동승했던 최경덕 당시 동아일보 사진부장(작고)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당시의 광경을 알겠다고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며 특히 김주열 군의 시신과 고려대생들이 깡패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을 유심히 봤다”고 말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2년 12월에는 당선인 자격으로 방한해 6·25전쟁 중 전선을 시찰한 적이 있다. 전쟁의 참상만을 기억하던 그의 눈에 신생국 한국의 국민들이 분단과 전쟁을 겪었음에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에 쏟아져 나와 피를 흘리는 모습은 충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방한 뒤 4·19혁명에 대해 “피와 용맹으로 자유를 보존했다”고 말했다.

4·19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사진집 ‘민주혁명의 기록’은 “이 한 권을 삼가 젊은 영령 앞에 바칩니다”라는 헌사로 시작한다. 발간사는 “2·28 대구학생 데모로 시작해 4·26 감격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총탄으로 쓰러지는 젊은 사자들을 부축하여 가며 렌즈로 뒤쫓은 피로 엮어진 역사의 페이지, 민주혁명의 단면을 추려보았다”라고 적었다.

이 책에 담긴 흑백사진 283장은 대부분 당시 동아일보 사진부 최경덕 부장, 이명동 차장, 박용윤 홍성혁 이의택 기자가 찍은 것들이다.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전국의 학생 시민 시위대, 태극기에 덮인 김주열 군의 시신, 끌어내려진 이승만 대통령 동상, 습격당하는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 사택 등 2·28 대구민주운동부터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발표한 4월 26일까지 혁명의 생생한 모습이 담겼다. 6월 1일 초판 2만 부를 찍었다가 10여 일 만에 매진돼 다음 달 발간한 재판 1만 부까지 모두 팔리는 등 열띤 호응을 얻었다.

표지에는 계엄군의 탱크 위에 올라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사진이 실렸다. 이를 촬영한 박용윤 기자(81)는 “박수치는 시민들의 손이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타 신문이나 각종 서적 등에 출처 없이 실리는 등 4·19혁명의 승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이 됐다.

동아일보 사진기자들은 서울 부산 마산을 누비며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생사를 오가며 이 치열한 혁명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4월 19일 오후 서울 경무대 앞에서 학생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모습을 촬영한 이명동 당시 차장(90)은 “선혈에 물든 태극기를 안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다 죽어가던 학생들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