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청장이 16명 이름을 불렀다경찰간부회의가 확 얼어붙었다“인사카드 기록-특별관리” 지시청탁1명은 회의불러 해명요구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내 회의실. 경찰간부들이 모인 참모회의 도중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사진)은 경찰관 16명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모두 경정 계급의 낯익은 이름이었다. 참모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잠시 정적이 흐르자 조 청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외부 인사를 통해 나에게 인사청탁을 한 경찰관들”이라고 밝혔다. 순간 회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조 청장의 말에 참모진은 모두 경악했다.
○ 인사청탁 경찰관 추후 인사에 불이익
15일 서울경찰청 간부들에 따르면 조 청장은 당시 인사교육과장에게 “지금 내가 거론한 경찰관들은 인사카드에 기록하고 특별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첫 인사인 만큼 이번에는 넘어가지만 차기 승진 인사, 보직 변경 인사 때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는 경고였다. 조 청장은 또 아예 인사청탁을 한 일선 경찰서 경정 한 명을 참모회의 때 직접 불러 청탁 과정을 설명하도록 지시했다. 이 경찰관은 “계급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절박한 상황에서 잘못 생각했다”고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인사에서 해당 경찰관들은 대부분 청탁한 자리를 받지 못했고 일부는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인사과는 기존 인사카드에 인사청탁 여부를 기록할 자리가 없어 별도의 파일을 만들어 첨부하기로 했다.
조 청장의 파격적인 공개에 서울경찰청 간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간부는 “다들 너무 놀라 정신이 멍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경정은 일선 경찰서장급인 총경 승진을 눈앞에 둔 계급이라 승진에 유리한 보직을 받기 위해 정치인 등 유력 인사를 동원한 인사 로비가 적지 않다.
○ 경찰 쇄신 의지에 긍정적
조 청장은 취임 후 “오로지 성과와 실적으로 평가하겠다”고 강조하고 단속 대상 업주들과의 유착이나 근무 태만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이달 초 경찰관 가운데 근무태도가 불성실한 직원들에게는 아예 보직을 주지 않고 경찰서별로 70% 이상 간부를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쇄신에 나섰다. 경정·경감급 인사 675명, 경위 이하 1892명 등 2567명을 재배치했다. 근무태도나 기강에 문제가 있는 경정급 경찰관 2명에게는 보직을 주지 않고 지정 ‘숙제’를 해오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근무 분위기를 저해하는 경위 이하 103명을 다른 경찰서로 전보 발령했다.
조 청장의 쇄신 드라이브에 대한 일선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일선 경찰서 간부들은 “인사운동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이 피해를 봤다”며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찰관은 “모든 경찰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방향 자체가 옳기 때문에 불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