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혁명과 동아일보자유당 부정부패 사설-기사로 고발“3·15부정선거는 무효” 호외 발행김주열군 죽음 알려 혁명 불붙여시위 생생한 보도… 시민승리 이끌어
○ 부정선거 수법 샅샅이 파헤쳐
4·19혁명 전 동아일보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며 비판 보도를 계속했다. 자유당 정권이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관권선거를 벌이자 그해 2월 9일자 ‘장충단 강연회장에 갔다가 몽둥이와 권총으로 구타’ 기사로 이를 보도했다. 2월 12일 오후 정·부통령후보 장택상 박기출의 선거운동원들이 폭력배에게 구타당하고 추천 서류를 강탈당하자 이를 사진으로 특종 보도하는 등 일찌감치 부정선거를 폭로했다.
3월 3일 민주당이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 지침인 ‘선거방법지령’을 폭로하자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초당적 특별조사단의 구성을 촉구한 뒤 영호남과 충남 일대에 기자를 특파해 은밀히 진행되던 부정선거 사전 공작을 ‘3·15선거 카르테’라는 제목으로 선거 전날까지 연일 게재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보도로 3·9인조 공개투표, 공무원마다 번호표 10장 확보운동, 협박에 의한 민주당 선거위원 사퇴, 공개투표 연습 등의 부정선거 수법들이 샅샅이 파헤쳐졌다.
○ 동아일보에 실린 김주열 군 사진 도화선
동아일보와 시민들의 노력에도 3·15부정선거가 자행되자 민주당은 ‘3·15선거는 불법, 무효’라고 선언했다. 동아일보는 호외를 발행해 이를 전했다. 동아일보는 3월 15, 16일자로 ‘사복경관이 공개투표 지휘’ ‘3인조 공개투표 끝내 감행?’ ‘터놓은 부정선거’ ‘백주 공공연한 테러’ ‘마산서 데모군중이 지서를 습격’ 등의 기사를 내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 수천 명이 들고 일어났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3·15의거가 일어나자 동아일보는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혹시 암매장한 시신이 없을까 추적하면서 시위 사망자 유족 사연을 연일 보도했다.
4·19혁명 당시 고려대 2학년이었던 김유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은 “동아일보는 앞장서서 부정선거를 폭로하고 시위대의 주장을 전국에 전하며 4·19혁명의 불을 댕겼다”고 회상했다.
○ 계엄하에서도 “이승만 박사가 책임지라” 직필
부정선거와 자유당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는 전국에 확산됐다. 4월 19일에는 고등학생, 대학생과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고,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했다. 이날 동아일보 이명동 사진기자가 총탄이 비 오듯 하는 경무대 앞 현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학생들의 모습을 유일하게 촬영해 보도했다. 이 기자는 “시내 곳곳에 나가 있던 동아일보의 취재 차량은 여러 곳의 시위 상황을 시위대에 전하는 통신병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군대가 서울에 출동하고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4월 21일자 사설에서 ‘부정선거 무효화와 재선거’를 요구했다. 22일에는 4·19 희생자들을 위한 위문금품 접수를 사고로 게재하고 24일 희생학생위령탑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성신여대 사학과 홍석률 교수는 “동아일보는 계엄령이 내린 뒤 정국의 향방이 불투명하던 때에도 보도 통제를 무릅쓰고 이승만 하야를 주장했다”며 “동아일보가 AP통신을 비롯한 외신 보도를 전하면서 4·19혁명 전후 한국의 정세가 세계에 그대로 알려지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시위대를 고무시켰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동아일보 차량 가는곳마다 시민들 박수치고 만세불러
지국엔 제보 끊이지 않아” ▼
■ 당시 본보 기자였던 이만섭 前의장
1960년 4월 11일 김주열 군의 시신이 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를 무렵 이 의장은 국회조사단과 함께 마산에 특파됐다. 현장은 이미 동아일보 사회부 이강현 기자(작고)가 취재 중이었다.
“마산은 전쟁터 같았어요. 시민과 경찰이 정면충돌해 유혈 사태로 번졌거든요. 13일 밤에는 마산 도립병원에 안치됐던 김주열 군의 시신을 경찰이 빼돌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병원으로 달렸어요. 시신을 싣고 김 군 고향인 남원으로 향하는 경찰차를 취재차량을 타고 추격하다가 경찰차들이 가로막아 결국은 놓쳤습니다.”
이 의장은 당시 ‘마산 사태 진상조사단’으로 내려온 자유당 의원들이 4월 14일 “마산 시위의 배후에는 공산당이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발표를 하면서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여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마산으로 특파되던 날 아침에 장면 부통령을 공관으로 찾아가 만나 ‘나중에도 떳떳하게 정치를 하려면 지금 부통령직을 내던지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학생들의 희생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고 건의했어요. 장 부통령은 ‘국민들이 4년 임기로 뽑아주었는데 도중에 그만둘 수 없다’고 답했고….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 의장은 “동아일보 취재 차량을 타고 시위 중인 마산 시가를 지나면 시민들이 열광하며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동아일보 마산지국에는 각종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3·15 부정선거를 폭로하고 마산의 시위를 집중 보도했습니다. 김주열 군의 억울한 죽음을 전국적으로 알린 것도 동아일보였습니다. 4·19혁명은 동아일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