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
《“개탄스럽다(deplorable).” 25일 개봉하는 ‘러블리 본즈’(15세 이상 관람가)에 대해 미국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일간지 ‘시카고 선 타임스’의 리뷰에서 밝힌 소감이다. 이웃 집 남자에게 강간 살해당한 열네 살 소녀의 영혼이 죽음 뒤 상황을 관찰하며 들려주는 이야기. 에버트는 “무참히 토막 나 죽어간 뒤 영원히 열네 살로 살게 된 ‘천상의 피조물’이라니…. 영화 전체가 감독의 실수”라며 별점 네 개 만점에 두 개를 줬다.》
원작소설 너무 유명, 평단의 실망감 많아
통쾌한 결말 기대 않는다면 잔잔한 감동
‘러블리 본즈’는 살해당한 열네 살 소녀 수지(시얼샤 로넌)의 시선을 통해 ‘영혼이 삶을 포기하는 과정’을 그린다. 사진 제공 퍼스트룩
수지는 마음에 두고 있던 잘생긴 옆 반 남자아이로부터 난생 처음 데이트 신청을 받은 날 죽음을 맞는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걱정, 범인에 대한 증오 때문에 천국으로 떠나지 못하고 ‘중간계’를 떠돌지만 현실에는 간여할 수 없다. 이런 설정은 20여 년 전 ‘올웨이즈’, ‘사랑과 영혼’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것. 하지만 ‘러블리 본즈’는 ‘사랑과 영혼’ 같은 권선징악의 복수를 슬쩍 피해간다.
이 대목에서 오해가 발생한다. 영혼이 사람을 이끌어 복수를 돕는 ‘영화 같은’ 결말은 원작에도 없다. 잔혹한 영화로 이름을 알렸던 감독에 대한 기억이 영화 속 살인마의 무표정한 얼굴과 중첩되면서, 통쾌한 응징을 기대했던 관객의 욕구불만과 뒤섞이는 것이다.
원작과 잭슨 감독을 잘 모른다면 어떨까. ‘반지의 제왕’ 이후 잭슨 감독의 행보는 위태로워 보였다. 전작인 ‘킹콩’은 아카데미 시각, 음향효과상을 받았지만 스토리텔링이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러블리 본즈’의 일부 장면은 ‘원작의 힘 덕분에 영화에서 성공했다’는 평가절하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신비롭게 묘사한 원작을 괴짜감독이 훼손했다는 비난도 있지만, 잭슨 감독은 오히려 어머니의 외도 등 원작의 자극적 요소를 걷어내고 ‘자기 없는 세계’의 흐름을 서서히 수긍해 가는 ‘죽은 소녀의 성장’에 집중했다. 범행 후 살인마의 목욕 장면, 절망에 빠진 아버지가 수지와 함께 만들었던 돛단배 모형을 부수는 장면의 시각 효과는 ‘모형을 부수며 오열했다’는 짤막한 문장을 영화가 어디까지 영상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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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블리 본즈`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