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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14세 소녀의 영혼… ‘영화같은’ 복수는 없다

입력 | 2010-02-16 03:00:00


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

《“개탄스럽다(deplorable).” 25일 개봉하는 ‘러블리 본즈’(15세 이상 관람가)에 대해 미국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일간지 ‘시카고 선 타임스’의 리뷰에서 밝힌 소감이다. 이웃 집 남자에게 강간 살해당한 열네 살 소녀의 영혼이 죽음 뒤 상황을 관찰하며 들려주는 이야기. 에버트는 “무참히 토막 나 죽어간 뒤 영원히 열네 살로 살게 된 ‘천상의 피조물’이라니…. 영화 전체가 감독의 실수”라며 별점 네 개 만점에 두 개를 줬다.》

원작소설 너무 유명, 평단의 실망감 많아
통쾌한 결말 기대 않는다면 잔잔한 감동


 ‘러블리 본즈’는 살해당한 열네 살 소녀 수지(시얼샤 로넌)의 시선을 통해 ‘영혼이 삶을 포기하는 과정’을 그린다. 사진 제공 퍼스트룩

원작은 2002년 출간돼 세계에서 14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연출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피터 잭슨(49), 제작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참여했다. 마크 월버그, 레이첼 와이즈, 수전 서랜든 등 출연 배우의 연기는 이름값에 부끄럽지 않게 탄탄하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아 보이는데 평단의 반응은 차갑다. 워싱턴포스트는 “불분명하고, 너무 길고, 감상적인 시각효과에 원작의 분위기가 희생됐다”며 에버트를 거들었다.

이런 비판은 원작의 인기와 감독의 경력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반지의 제왕’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기 전 잭슨 감독은 할리우드의 악명 높은 괴짜였다. 메스꺼운 신체훼손 장면으로 가득한 초기작 ‘고무 인간의 최후’ ‘데드 얼라이브’는 어지간한 공포영화 마니아라도 평온한 마음으로 보기 어려운 영화다. 주인공 수지의 시체를 토막 내 금고에 넣은 뒤 욕조에 들어가 앉은 이웃집 살인마의 개운한 표정에는 이들 초기작의 흔적이 엿보인다.

수지는 마음에 두고 있던 잘생긴 옆 반 남자아이로부터 난생 처음 데이트 신청을 받은 날 죽음을 맞는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걱정, 범인에 대한 증오 때문에 천국으로 떠나지 못하고 ‘중간계’를 떠돌지만 현실에는 간여할 수 없다. 이런 설정은 20여 년 전 ‘올웨이즈’, ‘사랑과 영혼’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것. 하지만 ‘러블리 본즈’는 ‘사랑과 영혼’ 같은 권선징악의 복수를 슬쩍 피해간다.

이 대목에서 오해가 발생한다. 영혼이 사람을 이끌어 복수를 돕는 ‘영화 같은’ 결말은 원작에도 없다. 잔혹한 영화로 이름을 알렸던 감독에 대한 기억이 영화 속 살인마의 무표정한 얼굴과 중첩되면서, 통쾌한 응징을 기대했던 관객의 욕구불만과 뒤섞이는 것이다.

원작과 잭슨 감독을 잘 모른다면 어떨까. ‘반지의 제왕’ 이후 잭슨 감독의 행보는 위태로워 보였다. 전작인 ‘킹콩’은 아카데미 시각, 음향효과상을 받았지만 스토리텔링이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러블리 본즈’의 일부 장면은 ‘원작의 힘 덕분에 영화에서 성공했다’는 평가절하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신비롭게 묘사한 원작을 괴짜감독이 훼손했다는 비난도 있지만, 잭슨 감독은 오히려 어머니의 외도 등 원작의 자극적 요소를 걷어내고 ‘자기 없는 세계’의 흐름을 서서히 수긍해 가는 ‘죽은 소녀의 성장’에 집중했다. 범행 후 살인마의 목욕 장면, 절망에 빠진 아버지가 수지와 함께 만들었던 돛단배 모형을 부수는 장면의 시각 효과는 ‘모형을 부수며 오열했다’는 짤막한 문장을 영화가 어디까지 영상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러블리 본즈’는 뒷맛이 개운한 장르영화는 아니다. 확실한 결말을 기대한다면 아예 보지 않는 편이 좋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을 읽는다면 양쪽 모두에서 색다른 별미를 찾을 수 있을, 복잡한 짬뽕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동영상] ‘러블리 본즈’ 피터잭슨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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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블리 본즈`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