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하지 않는 솔직-투박한 감정의 폭발력
폭력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장훈 감독의 솜씨가 빛나는 영화 ‘의형제’. 사진 제공 쇼박스
①정면승부(正面勝負)=의형제의 시나리오는 거칠고 허점이 많다. 게다가 ‘의형제’란 제목은 장훈의 전작 ‘영화는 영화다’만큼이나 직설적이고 촌스럽다. 바로 이것이 장훈의 영화가 가진 에너지의 실체다. 그의 영화 제목은 늘 ‘소재’인 동시에 ‘주제’다. 이는 그가 에둘러 말하거나 아름답게 포장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단순명료한 이야기를 단순명료하게 풀어내는 그의 영화적 패기와 박진감은 내러티브가 갖는 개연성의 부족을 뒤덮어버릴 만큼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 층 한 층 정교하게 쌓아가는 쪽이 아니라, 반대로 이야기를 후다닥 비약시키면서 감정을 확 폭발시켜 버리는 쪽이다.
이야기의 논리력보단 감정의 폭발력을 따라가는 장훈의 스토리텔링은 의형제가 기존 할리우드 ‘버디 무비’(두 명의 파트너가 운명공동체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전형적인 영화)의 문법을 차용하면서도 어느새 그 문법을 지혜롭게 용도 폐기해 버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림자’란 이름의 남파 킬러가 북한 정권의 배신자를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을 담은 영화의 시작 부분은 블록버스터의 이른바 ‘5분의 법칙’(영화시작 5분 안에 관객의 이목을 끄는 확실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기대치를 끌어올리고 집중도를 높이는 방식)에 충실한 장치. 하지만 전직 국가정보원 출신의 흥신소 사장 송강호와 버림받은 남파공작원 강동원이 서로의 정체를 숨긴 채 불편한 동거를 계속하다 결국 상대가 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음이 밝혀지게 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대중이 익숙해 있는 기존 장르구조와는 다른, 무척 생소한 ‘놈’이다. 이런 엄청난 비밀이 굉장한 액션을 통해 밝혀지는 게 아니라, 평온하고 나른하기까지 한 추석 차례상 앞에서 송강호가 툭 던지는 짧은 대사 한마디(영화 관람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이 대사를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로 허무하게(?) 밝혀지다니…. 관객의 허를 찌르면서 순식간에 비등점을 넘어버리는 감정의 수직상승은 이야기의 정합성이라는 논리적 잣대론 해석하기 힘든 장훈 영화의 강렬한 존재감이다.
익숙한 듯 보이면서도 까놓고 보면 불친절하고 낯선 손님 같은 장훈의 영화예술. 앞으로 장훈의 미래는 둘 중 하나일 공산이 크다. 더욱 놀라운 차기작을 보여주며 자기 진화를 거듭하거나, 아니면 그럴듯한 담론을 구사하며 잘난 체하다가 대중으로부터 따돌림당하는 것 말이다. 나는 물론 장훈이 전자(前者)이기를 바란다. 그가 부디 매끈하고 미학적인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전히 용감하고 직설적이며 한층 더 무지막지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