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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 큰 ‘21세 대인배’… 빙상 기대주서 대들보로

입력 | 2010-02-16 03:00:00

■ 쇼트트랙서 밴쿠버 첫 金 이정수는…

“형들이 더 뛰어난데 운 좋아”
기쁨 뒤로하고 선배들 위로




“실감 안 나요”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이정수가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정수는 1000m와 5000m 계주에서 3관왕에 도전한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대인배(大人輩).’

작고 예쁘장한 얼굴, 뽀얀 피부에 수줍은 듯한 미소.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그의 외모를 보면 이 별명이 선뜻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증명했다. 왜 21세에 불과한 그가 대인배로 불리는지….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이 열린 14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 유난히 침착한 표정으로 출발 라인에 서 있는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출발 총성이 울린 뒤에도 평상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마지막 바퀴. 끝까지 자신의 레이스에만 집중한 그는 결국 첫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화려한 경력의 대표팀 선배들도, 올림픽 때마다 ‘한국 타도’를 부르짖던 ‘여우’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도 그를 앞서지 못했다. 그는 두 팔을 불끈 쥐며 잠시 환호하더니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네요. 형들이 실력이 좋은데 저만 운 좋게 영광을 누려서….”

한국 쇼트트랙의 기대주에서 대들보로 자리 잡은 이정수(단국대) 얘기다. 자신의 올림픽 데뷔 무대를 금빛으로 장식하며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악바리’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우승 비결을 운이라고 얘기했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훈련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김기훈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은 “정수는 운동에서만큼은 절대 ‘적당히’가 없다. 1등을 한 날도 경기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밤늦게까지 훈련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누구보다 아들의 승전보에 기뻐한 아버지 이도원 씨(59)도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진 힘든 훈련을 항상 묵묵히 참아줘서 대견스럽다”며 “내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내 앞에선 ‘힘들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게 정수”라며 활짝 웃었다.

이정수는 200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개인 종합 1위를 하며 처음 주목받은 뒤 이후 고속 성장해 밴쿠버 겨울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2위로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성격이 차분하고 어른스러워 대인배란 별명을 얻었지만 신세대답게 할 말은 꼭 하는 성격이다. 준결선과 결선에서 오노와 신경전을 벌인 그는 “오노의 몸싸움이 심했다. 기분이 불쾌해 시상식에서 꽃다발을 받을 때도 표정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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