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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민립대학 설립운동’ 面조직 기록 첫 공개

입력 | 2010-02-16 03:00:00

애국지사 후손 심정섭씨 민초들의 대중운동 확인




15일 애국지사 후손인 심정섭 씨는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나주지방부 반남면 집행위원 추천장을 본보에 최초로 공개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반대해 1920년대 민족주의자들이 벌였던 민립대학 설립운동이 면(面)지회까지 조직된 대중운동이었다는 기록이 처음 공개됐다.

애국지사 후손인 심정섭 씨(67·광주 북구 매곡동)는 15일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나주지방부 반남면 집행위원 추천장을 본보에 공개했다. 가로 36.1cm, 세로 26.3cm 크기의 종이 재질인 추천장은 ‘나주군(현재 전남 나주시) 반남면 청송리 이근배. 중망(衆望·여러 사람의 뜻)에 의해 귀하를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나주지방부 반남면 집행위원으로 추천함. 1923년 12월 20일’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조선민립대학 기성회나주지방부 집행위원장 정안민이 추천장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도 쓰여 있다.

‘민족의 실력을 키우자’는 일제강점기 대표 민족운동인 민립대학 설립은 3·1운동 이후 1920년 한규설 등이 만든 조선교육회에서 처음 논의됐다. 1922년 이상재, 이승훈, 윤치호, 김성수, 송진우 등이 민립대학 기성준비회를 조직했고 1923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460여 명이 모여 총회를 가졌다. 민립대학 설립기금 1000만 원을 3년간 나눠 모으기로 총회에서 결의했다. 중앙부와 전국 각지, 만주 간도, 미국 하와이 등에 100여 개 지방부가 만들어져 모금운동을 벌였다.

일제는 민립대학 설립 인사들이 민족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구실로 감시했고 자금 모집을 위한 지방강연을 중지하고 청중을 해산하는 등 갖은 탄압을 했다. 관동대지진과 대홍수까지 겹쳐 민립대학 설립이 좌절됐고 일제는 1925년 경성제국대학을 만들었다.

홍영기 순천대 인문학부 교수는 “일제는 우리가 정치, 경제를 배우면 식민통치에 방해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일제 탄압으로 민립대학 설립이 실패했고 광복 이후까지 다른 4년제 대학은 설립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추천장은 민립대학 설립운동이 지식층만이 아닌 평민들까지 참여한 대중운동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독립기념관에서 15년 동안 연구했지만 민립대학 설립운동 지방 기록을 본 적이 없다”며 “이번 추천장은 민립대학 설립운동이 면 조직까지 결성된 대중운동이라는 것을 입증한 자료인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편 구한말 의병활동을 했던 주촌 심의선 선생(1870∼1945)의 증손자이자 중국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백강 조경한 선생(1900∼1993)의 외손자인 심 씨는 다음 달 1일 3·1절을 맞아 애국지사 60여 명의 글을 모은 유묵집 ‘민족의 기백’을 발간할 예정이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