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장관회담 이상으로 주목을 끄는 것은 공동 기자회견이었다. 오카다 외상은 한일 강제병합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100년 전에 일어난 일은 한국인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적 자긍심에 큰 상처를 받은 사건이었다. 나 역시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합된 측, 아픔을 겪은 피해자의 기분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언급은 일본 대다수 국민의 견해이자 양식 있는 일본 보수파의 견해이기도 하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식 방일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도 이해하고 있었다. 일본이 그 같은 일을 저지른 이상 한 번은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카소네 씨의 이 같은 생각은 후에 무라야마 담화의 토대가 됐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그리고 이는 후에 ‘김대중-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공동선언’으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오카다 외상과 나카소네 전 총리가 모두 ‘민족주의의 상대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민족주의의 상대성은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접점이자 국제주의를 향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다만 두 발언은 모두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카다 외상은 귀국 후 “일본 국민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카다 외상이 일왕 방한을 두고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한 것도 일본 국내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지난해 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일왕의 특별회견이 일본 내에서 비판을 받은 것처럼 일본에서는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민감하다. 한국인은 “강제병합 100년의 매듭을 짓기 위해서라도 일왕의 방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혹여 ‘정치적 이용’이라는 거센 비판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재일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문제 역시 정치 쟁점이 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 공명당, 사민당은 적극적이지만 대부분의 자민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의 일부는 반대 또는 소극적이어서 7월에 있을 참의원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큰 진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이것이 가능하면 내년 이후 일왕 방한의 길이 열릴지 모른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한다면 내년은 한일관계에 획기적인 한 해가 될 것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