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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카네기홀 ‘기적의 공연’ 불우 청소년들 멋지다

입력 | 2010-02-16 03:00:00


베네수엘라는 정치적으로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덫에 걸려 있지만 빈곤층과 서민층 청소년을 중심으로 200여 개의 오케스트라가 활동하는 ‘클래식음악 강국’이다. 이 나라에 어린이 오케스트라까지 번창하게 된 것은 경제학자 출신 정치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의 헌신적 노력 덕분이다. 그는 청소년을 하나로 묶어 범죄를 줄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음악을 매개로 삼았다. 총과 마약 대신 악기를 잡은 거리의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정서를 순화하고 규율에 헌신하게 됐다.

클래식 연주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이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 고아 출신으로 구성된 부산 소재 ‘소년의 집’ 관현악단이 11일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연주를 훌륭하게 마쳐 ‘기적의 연주’라는 찬사를 받은 것이다. 이 악단은 ‘꿈의 무대’라는 카네기홀에서 마에스트로 정명훈 씨의 아들 정민 씨의 지휘로 베르디, 차이콥스키 등의 곡을 한마음으로 연주했고, 청중은 10여 분간 기립박수를 보내며 ‘앙코르’를 합창했다. 어려운 보육원 살림살이에 그럴듯한 악기도, 비싼 레슨도 없었지만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키면서 실력을 갈고닦아 ‘세계 문화 1번지’ 뉴욕을 감동시켰다.

이 공연이 성공을 거두기까지 정명훈 씨의 힘이 컸다. 우연히 소년의 집 관현악단의 연주를 접한 그는 지휘 공부를 하는 아들에게 지도를 맡기고 카네기홀 공연을 주선했다. 선뜻 악기를 지원하고 무료 레슨을 해주며 연주복을 협찬해준 후원자들도 우리나라가 ‘살 만한 사회’임을 보여줬다.

이번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소년의 집 청소년들의 열정과 노력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동정심만으로 카네기홀 공연을 주선할 수 없다.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정 씨의 말대로 각고의 연습을 거듭해온 이들은 힘든 여건에서도 서로를 다독이며 놀라운 화음을 이뤄냈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팽배해 있다. 성공은 노력의 대가라기보다 부의 대물림이나 요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남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증오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대로 부와 명성을 가졌으나 베풀기는커녕 약자들한테서 등을 돌리고 그들만의 안락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다.

이번 카네기홀 공연은 스스로 꿈꾸고 노력하면 이뤄질 수 있음을, 그리고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동시에 보여줬다. 이들의 훌륭한 연주는 지금의 처지에 낙담하지 않고, 상황을 남 탓으로만 돌리지도 말고, 스스로 일어나라는 메시지를 모든 청소년에게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