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삼성전자, 시장지배력 한계… 경쟁사 비해 ‘저평가’

입력 | 2010-02-17 03:00:00

■ 작년 매출 세계 IT업계 1위에도 시가총액 9위 머문 까닭은





매출 대비 영업이익 8% 그쳐
구글 54%-MS 37%보다 크게 낮아
디지털-휴대전화 7조원 이익
미 래사업 투자로 수익구조 바꿔야


‘매출액 규모는 금메달, 순이익은 5위, 주가는 9위.’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차지하는 현주소다. 최근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을 토대로 세계 IT 기업 가운데 매출액 기준 1위가 됐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실적 발표일인 지난달 29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996억 달러)은 글로벌 IT 기업 중 9위였다. 반대로 매출규모 9위인 구글은 시가총액에서 3위를 차지했다.

한국 기업이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을 제치고 매출액 1위를 달성했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 한 해 매출액 136조2900억 원(약 1171억 달러)은 제품 개발력과 기술력, 인적 자원, 경영시스템이 골고루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삼성전자의 주가가 실적보다 낮게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미국보다 낮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가 되려면 더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독점적 시장지배력의 부재

동아일보가 대신증권에 의뢰해 지난해 세계 IT 기업의 실적을 집계한 결과 1월 말 현재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는 매출액이 1171억 달러로 1위, 영업이익은 94억 달러로 8위, 순이익은 90억 달러로 5위였다. 매출액 2, 3위는 HP와 IBM이었고 영업이익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IBM, HP의 순이었다. 반면 시가총액 상위기업은 MS와 애플, 구글의 순이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실적을 세부적으로 보면 영업이익에 각 사업부문이 골고루 기여했다. 즉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정보통신, 디지털미디어에서 각각 1조∼4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웬만한 국내 대기업 계열사들이 연간 1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기 힘들다는 점에 비춰보면 삼성전자는 뛰어난 대기업 계열사 4개가 결합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삼성전자가 다른 글로벌 기업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이유는 독점적 시장지배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컴퓨터에 MS의 운영체제인 윈도를 채택하지 않은 사용자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애플은 스마트폰 업체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세계 검색엔진 중 구글을 대체할 곳은 없다. 이들 기업은 모두 해당 분야에서 독점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정도의 독점력이 아직 없다. 세계 반도체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35∼40%로 1위이지만 반도체 경기에 따라 수익이 크게 오르내린다. 가전에서 소니를 제치고 1위에 올랐어도 또 다른 경쟁자에게 언제든 따라잡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휴대전화 역시 노키아와 애플 등의 공세로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러한 평가는 영업이익률에서도 나타난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구글이 54.3%, MS 37.3%, 애플 24.5%이지만 삼성전자는 8.0%에 불과하다. 지난해 1월 말에만 해도 시가총액 7위에 불과하던 애플이 1년 만에 2위로 훌쩍 뛰어오른 것은 아이폰을 바탕으로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영업이익률 덕분이다.

김철범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의 주가는 기업이 내는 이익을 몇 배수로 평가해줄 것인가로 결정된다”며 “이익의 성장성, 영업이익률, 안정성으로 따져본다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에 뒤진다”고 평가했다.

○ 올해가 수익구조 전환 원년 될 듯

하지만 올해는 삼성전자가 확실한 글로벌 1위로 도약할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수익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된다. 이전에는 반도체와 LCD가 주요 사업이었다면 지난해부터는 디지털미디어와 휴대전화가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 4개의 주축 사업이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선태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반도체와 LCD는 한 해 거둔 수익의 대부분을 투자해야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설비투자비가 거의 들지 않는 휴대전화와 디지털미디어는 버는 대로 이익을 쌓아둘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디지털미디어와 휴대전화의 두 사업부문에서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7조 원에 가깝다. 경기가 좋아져 영업이익이 더 늘어난다면 삼성전자는 미래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태양광 등 신규 사업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정권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안착하느냐 여부는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만들어 가느냐에 달렸다”며 “코닥과 소니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닥과 소니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찾아온 것을 몰라서 1등에서 추락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코닥이 필름을 디지털화하는 카메라 방식에 대규모로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례처럼 생각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에 ‘과거의 영광’으로 주저앉기 쉽다는 것이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