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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이 연구]강원 춘천 ‘한국동굴연구소’

입력 | 2010-02-17 03:00:00

“석순만 봐도 수천년 전 기온 보여”

한치 앞도 예측 못하는 탐사
등반-수중장비 갖춰 기초조사

이상기후의 역사적 영향 등
인문학 활용 가능 자료도 축적




한국동굴연구소 탐사팀이 2007년 충북 단양군 온달동굴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수로를 발견해 탐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동굴연구소

“들어갈 통로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호기심과 흥미를 일으키지만 위험 요인이기도 하죠. 산소통의 3분의 1 정도만 사용하고 나오는 것은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조치입니다.”

동굴 속에는 수중 탐사를 해야 하는 곳도 많다. 10일 강원 춘천시 한국동굴연구소에서 만난 이 연구소의 박재석 수중탐사팀장은 “난파선 수중 탐사는 진행 통로를 예측하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자연이 만들어 놓은 동굴에서 섣부른 예측은 사고로 이어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동굴은 인간의 탐험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의 몸만 겨우 들어가거나 등산용 줄을 타고 오르내려야 하는 곳도 많다. 관광용 공간은 예외적인 경우다.

강원 춘천시의 한국동굴연구소는 동굴이 널리 분포된 강원 지역의 특성에 맞춰 2004년에 설립됐다. 우경식 강원대 교수(지질학)를 소장으로 모두 5명의 연구원이 탐사 전문가다. 학술연구는 강원대 등 외부 연구기관이나 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한다.

우 교수는 지질학을 전공했지만 동굴을 연구하면서 역사에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탄소동위원소 반감기를 이용하면 동굴 속 석순에서 수백 년∼수천 년 전 대기의 기온을 추정할 수 있다”며 “조선시대였던 1400∼1880년의 기온이 특히 낮았다는 흔적을 최근 발견해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낮은 기온이 조선시대 농작물 작황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의 흉년 기록도 추적하고 있다. 그에게 동굴은 ‘자연 실록’인 셈이다.

전국 1000여 개 동굴 중 600∼700여 개가 강원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 영월의 고씨굴이나 삼척의 환선굴, 대금굴 등이 대표적이다. 충북 단양의 동굴에서는 선사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 뼈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전국에 분포된 동굴의 정확한 지도도 없을 만큼 국내 동굴 연구는 열악하다.

동굴에 대한 정확한 조사도 시급하다. 삼척 환선굴의 경우 길이가 6.2km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동굴연구소가 수중 탐사한 결과 8km로 늘었다. 관광객들이 모노레일을 타고 들어가는 대금굴은 아직 총길이가 얼마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 연구소는 동굴에 대한 기초 자료용으로 현재 전국 동굴의 학술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동굴 지도뿐만 아니라 종유석과 석순, 석화 같은 생성물과 거미, 새우, 노래기 등 동굴 생물 자료도 실린다. 연구소의 이종희 조사연구실장은 “물리적인 특성에 대한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동굴에 관련된 전설과 무속 신앙까지 조사할 수 있다”며 “그래야만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동굴의 석순을 이용한 고기후학 연구가 활발하다. 우 교수는 “과학저널 ‘네이처’ 등에는 동굴의 생성물을 이용한 고기후학 연구 논문이 연간 10여 편씩 실리고 있다”며 “중국학자는 당나라 멸망의 원인을 석순에서 찾아낸 기후변화로 설명하는 등 동굴 자료를 활용한 역사·인류학 연구도 활발하다”고 전했다. 동굴연구소에서도 동굴의 고기후학 연구에 주력할 방침이다.

한국동굴연구소는 인공시설물로 동굴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굴의 인문적 자연적 가치를 알리기 위한 동굴 관광 방안도 개발하고 있다. 김련 부소장은 “연간 기온 변화와 이산화탄소 농도 등 동굴의 자연 상태를 관찰해 동굴이 수용할 수 있는 관광객 수를 산출하고 있다”며 “이르면 올해 체험형 동굴관광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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