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슬-설-솔-밀 출산 도운 이길여 회장 “대학생되면 등록금”3년간 학비 대주며 “졸업땐 채용”네 자매 나란히 간호사 고시 합격… 같은 병원 같은 가운 입고 첫 출근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가운데)이 16일 길병원에 처음 출근한 네 쌍둥이와 함께 출생 당시 찍은 사진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황슬, 설, 솔, 밀 씨 자매. 사진 제공 가천의과대 길병원
가정형편이 어려워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받고 태어난 네 쌍둥이 자매가 모두 이 병원 간호사로 일하게 됐다. 주인공은 황슬(21), 설, 솔, 밀 씨로 이 가운데 슬과 밀 씨는 25일 경기 수원여대 간호학과를, 설과 솔 씨가 18일 강원 강릉영동대 간호학과를 각각 졸업한다. 이 자매는 16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 가천의과대 길병원에 신입 간호사로 합격한 38명과 함께 나란히 첫 출근 했다.
○ 이길여 회장과의 인연
네 쌍둥이의 출산 소식을 ‘휴지통’에서 전한 1989년 1월 12일자 15면 동아일보(위). 2007년 1월 11일자 A28면에는 출산을 도왔던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네 자매가 등록금이 없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장학금을 전달한 이야기가 실렸다.
이 회장은 다시 이들을 불러 등록금 2300만 원을 주며 격려하고, 또 한 가지 선물을 줬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너희들 모두를 길병원 간호사로 뽑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장은 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3년간 모두 1억2000만 원의 학비를 지원했다.
○ “가슴이 뜨거운 간호사 될 것”
네 쌍둥이는 이 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3년간의 학업과정을 마치고 1월 치러진 제50회 간호사 국가고시에 모두 당당히 합격한 것. 소식을 들은 이 회장은 기뻐하며 3년 전 약속대로 이들을 길병원 간호사로 채용했다. 쌍둥이들의 어머니 이 씨는 “이 회장 덕분에 자식 공부를 시켰는데 취직까지 시켜줘 너무 감사하다”며 “은혜를 받은 만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들을 집무실로 불러 “너희 부모님은 애국자이시다”라며 쌍둥이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과 자신이 의사로서 걸어온 인생 얘기를 들려줬다. 황슬 씨는 “열심히 근무해 병원에서 봉사정신이 가장 뛰어난 간호사가 되겠다”고 답했다.
이들은 앞으로 병원에서 한 달 동안 간호사 입문교육을 받은 뒤 희망 근무부서에 배치된다. 일란성 쌍둥이라 외모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황슬, 솔 씨는 마취과를, 설과 밀 씨는 신장내과를 각각 지원했다. 네 쌍둥이의 맏이인 황슬 씨는 “어릴 적부터 네 자매가 모두 간호사가 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게 꿈이었다”며 “이 회장께서 우리 자매와의 약속을 지켰듯이 우리도 ‘가난한 이웃을 더 배려하는 가슴이 뜨거운 간호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회장은 “일란성 네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힘든데 모두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라며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해 환자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